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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사이버문화 어른들부터 실천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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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우리는 한 세대를 살면서 두 세상을 산다. 하나는 우리가 몸을 부대끼며 더불어 사는 현실 세계요, 다른 하나는 컴퓨터를 매체로 한 사이버 월드, 곧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가상의 세계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두 세계를 오고 가면서 살아야 한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어른들은 상당수가 컴맹이었지만 요즘 들어 나이나 직업에 상관없이 온라인에 기대면서 살아야 맛이 난다. 사이버 세상의 애인이나 친구를 현실 세계와 연계할 수도 있고, 한 사이트 안에서만 부부나 부모의 인연을 가상해 실제 부부나 부모와 비슷한 역할을 하면서 e-세상 삶을 펼치기도 하고, e-동네.e-스쿨.e-커플 등이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보니 참으로 놀랄 만하다.

이 세상보다 e-세상은 그 변화의 정도가 훨씬 다양하고 폭 넓은 것은 물론 그 속도 역시 초고속으로 달라진다 하더니 문자만 주고받던 채팅방에도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 왔다. 우선 자신의 특징이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아바타를 만들고 걸맞은 옷을 차려 입는 것에서부터 수시로 쪽지를 보내거나 일대일 대화를 신청하는 방법도 그렇고 주제별, 지역별, 또래집단별, 커뮤니티별, 연예인의 팬클럽별, 게임의 종류별 등 여러 가지 유형의 채팅 방이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고, 아무도 모르게 입장하고 퇴장할 수 있는 투명 망토의 등장과 입장할 때 찬란한 조명과 함께 팡파르를 울려주는 사이키와 끝까지 부킹을 책임진다는 부킹에너자이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서치라이트.파워필통 등이 등장해 이제 문자만으로도 흥미와 신선함을 느끼던 시대는 휴지통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문자.소리.동영상.애니메이션 등이 함께 등장하는 입체적 채팅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지식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볼 것 다 보면서 은밀한 대화까지 나누다 보니 채팅의 후유증은 고스란히 현실세계에서 추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새로운 우범지대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몸과 돈을 잃고 나중에는 가정까지 파괴되는 현실을 접할 때면 그저 남의 일이겠지 하면서도 안타깝고 씁쓸함을 느낀다.

아이들만 사이버 중독이 생기는 게 아니고 그토록 씩씩하다는 한국의 아줌마들까지 맥없이 무너지고, 그 여파가 호기심 많은 초등학생의 성문화를 오도(誤導)하는 데까지 미치고 있음은 참으로 암담하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컴퓨터를 매체로 한 어른들의 카타르시스를 사이버상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현실세계까지 끌고 와 평상생활을 축내고 방해하는 것은 분명 적절치 못한 일이다. 공간을 초월해 익명으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다 보니 남의 인격은 아예 생각 밖으로 던져버리기 일쑤다.

이제 변화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사이버 세상을 매개로 자신의 마각을 드러내놓던 어른들부터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때마침 정부와 관계 당국에서 사이버 윤리를 강조하고 있으며, 정보화의 역기능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학생들에게도 정보통신윤리 교육이 실시되고 있으므로 이를 계기로 해 앞으로는 보다 즐겁고 건전한 사이버 문화의 육성과 모처럼 높은 수준의 정보화 마인드가 현실세계의 좋은 일로 연결됐으면 한다.

한용섭 광주 주월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