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 수요집회 5백회 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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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할머니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측이 벌이는 '수요집회'가 지난 13일로 5백회가 됐다.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1992년 1월 8일 첫 시위를 벌인 것으로부터 10년도 더 지났다. 그러나 '일본 군대 위안부 진상규명과 이에 따른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 및 피해자에 대한 법적 배상'요구는 여전히 대답없는 메아리로 허공을 맴돌고만 있을 뿐이다.

여성에게 순결과 정절을 요구해온 우리 사회의 오랜 인습의 벽을 뛰어넘어 자신이 '성 노예'였음을 드러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러나 정신대 할머니들은 군 위안부였다는 감추고 싶은 과거를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밝히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정신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자리잡게 된 데는 이들의 자기희생적 용기가 기여한 바 크다.

정신대 문제 해결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명예회복'에 있다. 1995년 일본이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주축으로 하여 '여성을 위한 아시아 국민기금'을 만들어 민간차원의 배상을 시도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정신대 할머니들이 이 돈을 받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만이 '범죄에 따른 희생자'로서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2000년 말 도쿄(東京)에서 시작해 뉴욕을 거쳐 지난 연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은 히로히토 전 일왕 등 전범들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비록 민간법정이긴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는 전쟁범죄라는 것이 국제 여론임을 일본 정부는 알아야 한다.

수요집회가 시작된 이래 이미 61명의 할머니가 사망했다. 현재 정부에 등재된 1백41명 또한 고령이다. 이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일본 정부는 진상규명에 성실히 임하는 자세를 보여야만 한다. 일본 정부는 수요집회의 요구를 더 이상 모르는 체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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