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천재 몽상가의 '뷰티풀 마인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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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 들먹이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영화란 죽은 영혼을 되살리는 것." 장 콕토의 말입니다.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가 딱 그렇습니다. 1949년 스물한살 나이에 '균형이론'을 발표, 천재 수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20대 후반 정신분열증을 앓으며 세인들에게서 잊혀졌던 존 F 내시. 그는 1994년 게임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망각의 강을 건넌 후 이번에 영화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영화는 감동적입니다. 내시의 주체 못할 천재성이 신비주의로 흐르는 과정과 남편을 치유하려는 앨리샤의 헌신은 무척 인상깊습니다. '빅 브라더'로 불리는 정부 비밀 요원 윌리엄 파처의 망령에 시달리는 내시의 심리 묘사도 탁월해 보입니다.

수(數)의 이성(reason) 을 믿었던 내시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해 삶에는 논리와 이성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알았다"고 소감을 밝힙니다. 그런 다음 그가 아내를 향해 "당신만이 내 삶의 이유(reason)"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내시 역을 맡은 배우 러셀 크로의 눈빛 및 걸음걸이 연기를 두고서 찬사가 따라 붙었습니다. 앨리샤 역의 제니퍼 코넬리도 영화의 다른 한 축을 지탱하기 충분했다는 평이었습니다. 이는 모두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며 순서대로 영화를 촬영해 배우들의 감정 이입과 집중력 유지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할리우드식 화장발만 넘치는 영화'로 몰아세우기도 하더군요. 각본을 맡았던 아키바 골드먼이 실비아 네이사의 원작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대신 그는 내시의 천재성·광기·노벨상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따른 듯합니다. 결과적으로 발병 이전 내시가 간호사 엘리너와의 사이에 사생아를 뒀던 점, 동성 연애자 함정수사에 걸려 체포당했던 사실, 그리고 발병 후 앨리샤와 이혼 후 재결합, 동독을 경유한 소련 망명 의혹 등을 빠뜨린 것이죠.

재작년 여름에 나온 원작 『아름다운 정신』 (1·2권,승산,올 들어 두꺼운 한권짜리 『뷰티풀 마이드』 로 재출간)은 그래서 영화와는 또 다른 의미를 갖나 봅니다. 책에선 저자의 경력인 뉴욕 타임스 경제 기자로서 '차가운 머리, 따뜻한 마음'의 체취가 물씬합니다. 내시의 수학과 게임이론을 전문적으로 기록하면서도 프린스턴·MIT·고등학문연구소 동료 등 주변 인물을 진짜 '뷰티풀'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 말미에 30년 망각의 세월에서 그를 건졌던 노벨상 수상의 뒷얘기와 역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있는 내시 아들 존 찰스를 함께 적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 이후 내시는 아들이 약을 타러 가는 길을 동행하는 것과 별명 그대로 '프린스턴의 유령'처럼 대학 도서관을 오가며 여전히 독창성의 세계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네이사는 그의 근황을 이렇게 추론하며 글을 맺습니다. "아들과의 체스, 게임에 지고 있거나… 아내와 사별한 대학원 친구 로이드 셰이플리(저자에게 『뷰티풀 마인드』 제목 아이디어를 준 사람)를 위로하는 전화를 1백5분간 계속하거나… 어느 천문학 강의를 들은 후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다시금 천재성을 되뇌게 합니다.

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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