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러·일 등과 하는 전략대화 "2005년 한국도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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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은 내년 1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공식 취임한 직후 양국의 외교차관급 고위 전략대화를 갖고 동맹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고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이 12일 전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지난달 20일 칠레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관계는 어느 때보다도 좋아지고 있다는 게 양국의 공통된 인식"이라며 "한.미관계를 보다 제도화하고 내실화할 수 있는 세부적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미국이 정기적으로 차관급 고위 전략대화를 하는 국가는 이스라엘.러시아.일본.중국 등 4~5개국에 불과하다"며 "미측이 이 같은 대화를 우리 측에 먼저 제안한 것은 그만큼 한.미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다른 당국자는 "한.미 양국은 고위 전략대화를 여는 것 외에 한.미 외교장관 회담과 정동영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의 방미 등 고위급 대화채널을 총가동할 방침"이라면서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대사가 지난 7일 미국으로 간 것도 미 국무부 본부 관계자들과 한.미관계 발전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와 함께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FOTA)의 후속인 한.미 안보정책구상회의(SPI)를 내년 초부터 본격화해 '한.미 신(新)안보선언' 등을 이끌어 내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 외교차관급 고위 전략대화=미국이 군사.외교 전략상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국가와 함께 가동하는 고위급 대화 채널. 여기서는 양국간 현안뿐 아니라 주변국 문제 등 권역의 주요 이슈가 폭넓게 다뤄진다. 때문에 한.미 외교차관급 고위 전략대화가 정례화할 경우 양국 동맹의 성격이 보다 포괄적이고 역동적으로 바뀔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이 대화는 지난 10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방한했을 때 반기문 외교부 장관에게 처음 제의한 것으로, 정부 측은 흔쾌히 응했다.

박신홍 기자

[뉴스분석] 달라진 부시…한·미관계 질적 변화 움직임

한.미관계의 질적 변화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양국 외교관계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12일 "부시 대통령은 신념이 대단히 강한 정치인이다. 재선 이후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외교안보 문제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달 칠레에서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미 백악관과 국무부 관계자들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시각이 미국 내에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칠레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우리 측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 손을 3~4차례나 꼭 붙잡았다고 전했다. 그만큼 회담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는 것이다. 다른 관계자는 "북핵 문제에 대해 한국이 앞장서서 돌파구를 열어보겠다는 노 대통령의 말을 부시 대통령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주변에 '노 대통령은 호감 가는 인물'이란 말도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지난주 여야를 망라한 국회 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들을 만난 미 행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은 예외없이 이라크 파병에 대해 고맙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전격 방문도 미 측은 좋게 보고 있다고 한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지난 2년간 '우리는 한.미동맹을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다'고 모든 경로를 통해 미 측에 설명했다. 그런데 최근에서야 미 측이 이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은 "미 정부 측 인사들을 만나보니 북핵은 물론 한국 문제 전반에 대한 시각이 부드럽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래가 탄탄대로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외교적 대화 수단을 모두 써본 뒤에야 대북 압박정책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설득과 압력을 병행하자는 입장"이라며 "이런 시각차를 어떻게 조율해 나가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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