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에는 언제나 국가의 그림자가 있었다 서양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상식의 통념 뒤엎는 서술 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다섯권 분량(2,5권은 연말 출간)으로 4천쪽이 넘는 방대한 신간 『사생활의 역사』는 로마제국에서 비잔틴·중세의 게르만을 거쳐 르네상스와 근·현대에 이르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생활의 역사를 다채로운 양상으로 보여준다.'조각난 역사'내지 '미시사'라는 이름으로 비난받기도 하는 다양한 주제의 치밀한 연구성과들이 '사생활'이라는 개념으로 한데 모여 '장기지속적인' 역사의 지형 위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울려 퍼진다.

사생활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공적 생활'의 빛이 만든 그늘을 다시 빛을 비추어 알아내려는 것이란 점에서 처음부터 해결하기 힘든 딜레마를 갖는다.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사생활이란 개념은 19세기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국가체제의 성립과 함께 태어난 근대의 자식이다. 따라서 이 책의 고백처럼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혼재돼 있던 근대이전 사생활의 장대한 역사는 쓰기도 어렵거니와 또 현대인들이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고백록·자서전이나 일기·편지 등이 감춰야 할 것을 드러내기 위해 쓰는 것이란 점에서 어쩌면 가장 거짓된 것일 수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어느새 그것에 손을 내밀게 되지 않던가!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다루고자 하는 주제만으로도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생활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근저에서부터 뒤흔든다. 예컨대 우리는 대개 사생활을 가정과 등치하거나 프라이버시라는 권리 개념을 통해 이해하며, 모든 종류의 사회성과 대립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사생활에 대한 욕망을 인간의 자연적 본성이라고 생각하며, 사생활의 역사란 사적 영역이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역사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생활의 역사란 그런 통념과 달리 "사회성의 형식들이 변형되어 온 역사"임을 이 책은 거듭 명시한다. "사적인 영역이 생겨나 공적인 속박에 맞서 스스로를 인정받아 가는 어렵고도 기나긴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로마의 건축가 비투르비우스는 집의 출현이 '개인'의 출현이 아니라 '사회'의 탄생이라는 측면과 결부시켜 설명한다.

또 17~18세기 프랑스 궁정귀족의 저택은 사교를 통해 궁정에 진출할 기회를 찾거나 자신의 영향력 안에 든 사람을 모으는 '공적' 공간이었다. 거기서 사생활은 사교와 대비되는 '친교'를 통해 형성되었는데, 이 경우 친교로서의 사생활은 '가정의 억압'에서 벗어난 영역이란 의미다. 즉 이 시기 사적 영역은 궁정 사회라는 공적 영역은 물론 가정이라는 영역에서도 동시에 벗어나는 새로운 영역을 지칭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생활의 역사'는 오늘의 사생활과 무관한 것이기도 하고 때론 정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사회는 자신의 고유한 사생활을 갖는다"고 책이 주장하는 근거다.

이 책은 사생활의 근대적 양상이 발전하는 데 첫 번째로 영향을 미친 것은 국가였다고 강조한다. 궁정귀족의 저택만큼이나 평민들에겐 거리·광장·우물가 등이 사회성의 공간이었는데, 국가가 이 사회성의 영역에 개입해 '공적인 것'은 국가이고 '사적인 것'은 개인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물론 '가정법원' 혹은 '부권박탈에 관한 법'처럼 가족적 영역에 국가가 개입하는 경로가 다양하게 있었다는 점을 추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생활에는 항상 '국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있었다고 하며, 사생활의 역사는 비정치적 역사가 아니라 "일상의 정치사"였다고 책은 말한다.

1985년 프랑스에서 첫 출간된 이 책은 고대부터 다양한 양식으로 변주되어 온 삶의 역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근대국가체제 이후를 사는 오늘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역사적 시기마다 고유한 사생활의 양식이 있었다'는 책의 주장은 또 '미래'의 사생활이 현재와 크게 다른 것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 다른 과거들만큼이나 다른 미래를, 또 다른 종류의 삶을 꿈꿀 수 있음을 뜻하는 건 아닐까?

이진경<연구공간 '너머'연구원·사회학 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