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 여중생 두번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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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경찰이 밀양 고교생들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내용을 부풀리고 피해자 보호를 소홀히 했던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지난 7일 "여중생 자매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학생 두명 등 5명이 집단으로 성폭행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 측의 항의를 받고 12일 "동생(13)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며 신원미상의 학생도 사건과 관련 없는 것으로 확인돼 피해자가 5명이 아니라 2명"이라고 정정했다.

경찰은 "구속.불구속된 41명 이외에 75명의 가해자가 더 있다"고 발표했으나 자체 논란 끝에 "증거가 없으니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취재진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 밖에도 "가해자 고교생들이 조직 폭력배 '밀양연합'의 일원으로 모두 문신을 새기고 체중도 80kg이 넘는 거구"라고 발표한 직후 "한명이 문신을 한 것 외에는 모두 허구였다"고 밝혔다. 수사를 맡은 김모(39)경장은 피해 여학생들에게 "밀양이 내 고향인데 너희들이 밀양 물을 다 흐려놨다"고 폭언하기도 했다.

또 경찰이 가해자 41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피해 여중생과 대면시켜 가해자를 가려내도록 해 보복 범죄에 대한 불안과 함께 수치심을 갖도록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대질이 끝난 뒤 경찰서 뒷마당에서 가해 고교생 가족 등이 피해 여중생(14) 일행을 둘러싼 채 "두고 보자. 몸조심해라"며 협박해 경찰에 입건됐다. 이 밖에도 피해 여중생들이 여자 경찰관에게 조사받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나 경찰은 이를 묵살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청 홈페이지 등에는 허점투성이인 이번 수사를 질타하는 네티즌의 글이 수천건 올라왔다. 또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부근에서 150여명의 네티즌이 참가한 가운데 1시간30분 동안 촛불집회가 열렸다. 한편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지낸 강지원 변호사는 밀양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여중생 무료변론을 맡기로 했다.

울산=이기원,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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