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건설에 환경 마인드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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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베를린시에는 1930년대에 노동자 계층을 위해 지은 후프아이젠 지들룽이라는 주거단지가 있다. 5층 공동주택이 호수를 끼고 큰 말발굽 모양으로 지어져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단지 주변에는 3~4층 연립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호수와 오래된 수목들,그리고 봄철 과일 나무에 피는 화사한 꽃이 어우러져 그림같이 아름답다.

또 옹켈 톰스 휴테(톰 아저씨의 통나무집)라는 주거단지는 20~30년대에 3~4층 건물로 지어졌으며 '숲속 도시'로 불린다. 그곳에는 이와 비슷한 주거단지가 많다. 이 단지들은 과거 노동자 계층을 위해 지은 것으로 우리의 임대주택에 해당한다.

지은 지 70년이 지났으나 이 주택들은 당시의 모습을 갖추고 내부만 리노베이션을 통해 현대식으로 개조됐다. 지금도 베를린 시민들이 좋아하고 살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주거단지다. 이들 단지는 건물이 낡았다는 이유로 재건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오래된 것이 아름답다'는 말은 우리에게 적용되지 못하는 것 같다. 좋은 외부환경보다 건물 자체에 더 가치를 두다 보니 새 것과 큰 것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주거면적을 넓히기 위해 30년도 채 안된 저층형 아파트 단지들을 아낌없이 부숴버린다. 더욱 더 고층화·고밀화된 단지로의 전환을 위해 모두들 서두르고 있다.

건교부는 전국 18개 지역의 그린벨트를 택지개발지구로 지정해 10만여 가구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그 가운데 6만 가구는 무주택 서민을 위한 국민 임대 주택이고,4만 가구는 일반 분양된다고 한다. 이번에 발표된 지구들은 대체로 5천가구 정도로 조성되며, 최대 규모는 1만6천9백가구로 신도시 수준이다. 주택 부족에 따른 가격 상승과 전세대란을 막아보자는 의도에서 이른 시일 내에 짓는다고 한다. 이런 거대한 단지들은 그린벨트에서 해제되고 지구 지정을 거친다. 이곳에는 내년 하반기부터 아파트가 착공된다.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는 하겠지만 환경시대에 걸맞은 1백년을 내다보는 계획이 되겠는가?

주택문제는 거의 모든 나라의 대도시에서 심각하다. 우리만 땅덩어리가 작은 게 아니다. 우리보다 더 좁은 주거공간에서 사는 일본인들이 왜 신(新)주거지 개념을 도입해 공동체적인 의식을 강조하려고 하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 세계적인 주거단지의 추세는 환경·생태쪽으로 기울고 있고, 이웃간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것도 큰 흐름이다. 우리는 아직도 아파트를 70~80년대와 마찬가지로 판에 찍어내듯 대량생산하고 있다.

건교부가 발표한 대로 이 짧은 시기에 그 많은 물량을 공급하려면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아파트를 건설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젠 아파트의 대량생산만이 주거문제를 해결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환경의 질을 무시한 채 주택 내부에만 관심을 두는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주거단지도 도시 생태계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앞서 든 독일의 사례처럼 20~30년대 주거단지들은 인공생태계지만 외부 공간의 자연성으로 인해 도시공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토의 보전을 위해 가능한 한 그린벨트의 개발을 절제해야 한다.또 주거단지 때문에 파괴된 환경을 복원하는 차원에서 생태적 설계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환경 마인드와 장기적인 계획,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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