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물을 끓이려고 가스레인지 불을 켠다
새벽 세시다
가스레인지의 스위치를 비트는 하얀 손이
낮엔 복숭아나무 죽은 가지 두어 개를 툭툭 분질렀다
아주 가까운 둔덕에서 소쩍새가 운다
그믐밤인가 보다
내가 청혼했던 여자의 잠도 깊겠다
내겐 벌써
저기 아득히 흘러가버린 과거가 있다
당신도 알다시피 매우 숭고한
쓰라린 과거다
-장석주(1955~ )'그믐밤'
새벽 세시에 홀로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떨리는 손으로 죽은 가지 몇 개를 분질러 본 적이 있는가.
어둠 속에 앉아 헤어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잠 못 드는 밤, 그 여자 몰랐었기를 바란 적이 있는가.
벌써 흘러가버린 그날에 대해 숭고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홀로 차 한잔 끓이려고 불을 켜는 그믐밤.
천양희<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