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없는 유물 62만점 자랑 찬란한 '보물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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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대만(臺灣)해협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중국 대륙과 마주하고 있는 대만. 한국과 단교(斷交·1992년 8월) 한지도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 동안 양안(岸)사이에 팽팽하게 감돌던 긴장감은 역사의 격랑 속으로 잦아드는 듯하고 섬나라 대만에는 봄이 따스한 훈풍과 함께 다시 찾아든다.

중국 5천년의 역사와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는 타이베이(臺北)시에도 봄빛은 완연했다.

◇고궁박물관=1965년 삼민주의(三民主義)주창자인 쑨원(孫文)탄생 1백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국립 고궁박물관.

그의 호를 따 중산(中山)박물관으로도 불리고 있다. 2시간 동안 주마간산으로 스치듯 본 그곳이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오래도록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아마도 문화적 충격이 컸던 탓이리라.

중국 공산당에 패한 장제스(蔣介石)총통은 대만으로 쫓겨나면서도 선조들의 손때가 묻은 문화유산을 가져왔다. 비록 전쟁에는 졌지만 그의 탁월한 선택은 패전 후 50여년간 대만 국민들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자그마치 62만점이나 되는 보물과 미술품들은 수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이방인들을 중국 문화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은나라 때의 갑골문자나 다양한 서예 작품은 이미 교과서에서 본 것들이어서 감흥이 덜하다.

오히려 서주시대 모공정(毛公鼎-받침대 세 개짜리 솥) 안쪽부분에 서주가 망할 때의 상황과 단장(斷腸)의 심경이 빼곡이 적힌 사연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화로나 식기 등 청동제품 표면에 뾰족뾰족 나와 있는 돌기는 다름아닌 여성의 유두(乳頭)를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도 재미있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며 열을 빨리 식히기 위해 돌기 장식을 했다는 점에서 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중국인들이 신성한 동물로 여기는 용은 그림이나 도자기·공예품 등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용의 발가락을 다섯개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일본과 한국에서 용 발가락을 각각 넷과 셋으로 표현하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박물관 직원은 "중국인들은 다섯이란 숫자를 좋아하는 데다 황실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이라고 귀띔한다. 용 발가락 수로 권력의 우열을 논했던 것이다.

박물관에는 송나라 휘종황제가 쓰던 방과 사무실 모습을 재현한 곳도 있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1천여년 전으로 돌아가 황제가 된 듯한 착각마저 들게 된다.

'황금으로 장식된 어의를 입고 흑단나무로 만든 용상에 앉아 천하를 호령하며, 청자와 백자로 주변을 꾸미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아와 옥으로 만든 노리개를 선물로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은 더없이 좋아진다.

삼대(三代)가 1백년 동안 상아 한개를 깎아 만들었다는 청조 말기의 조각품은 너무나 정교해 제작 과정이 세계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힌다.

엄지손가락 크기의 감람나무 열매씨로 만든 작은 배는 경탄을 자아낸다. 배 밑바닥에 소동파의 적벽부 전문을 새긴 기술은 인간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경제가 번창했던 명·청조대엔 조각 공예가 발달했다. 이 시기에는 목재뿐 아니라 대나무·상아·뿔·과일씨 등 조각 재료가 다양했다. 조각하기 어려운 재질일수록 황제를 기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설명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끝없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빛깔이 곱고 은은해 질리지 않는 송대의 자기(瓷器)도 수줍은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앉아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전세계에 남아있는 송대의 자기 36점 가운데 24점이 이곳에 소장돼 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야 비로소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대영박물관, 모스크바의 아르미타주 박물관과 함께 고궁 박물관이 세계 4대 박물관에 드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등불 축제=매년 정월 대보름날을 전후해 등불축제가 열린다. 그들의 고유문화를 엿볼 수 있는 축제의 백미는 대보름날 타이베이시 핑시(平溪)에서 열리는 천등 축제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로 만든 제갈공명 모자 형태(1m20㎝)의 등(燈)에 소원을 적고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린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향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수만개의 등불행렬은 아름다움을 넘어 장엄하기까지 하다.

◇한류(韓流)와 젊은이들=동남아 최대의 백화점이자 문화공간인 징화청(京華城)과 화나잉청(華納影城)이 위치한 '영화의 거리'에선 대만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타이베이의 명동인 시먼팅(西門町)거리에선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한류를 확인할 수 있고, 야시장 화시지(華西街)에서는 흑사·백사 등 다양한 뱀요리를 구경할 수 있다.

이밖에 카오슝 인근의 마오린(茂林)국가풍경구와 베이터우허(北投)의 온천지대도 가볼 만하다.

타이베이=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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