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사 춤에 푹 빠지니 내안의 열정이 눈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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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마리'는 그녀의 또 다른 '나'의 이름이다. 그녀는 26세의 살사 댄서. 살사(salsa)를 시작한 지 2년쯤 됐다. 경력은 길지 않지만, 살사의 국내 1인자로 꼽힌다.

매주 금요일 밤 마리는 '바히아'의 꽃으로 핀다. 바히아(Bahia)는 홍대 전철역 5번 출구 근처에 있는 바다. 이곳에서는 매주 금요일 오후 8시30분부터 정확히 두시간 동안 살사 동호인들의 춤 겨루기가 열린다.

문이 열리면 동호인들이 몰려들어 홀은 삽시간에 만원이 된다. 이윽고 균형잡힌 여체(體)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등이 파인 드레스를 걸치고 마리가 파트너와 플로어로 나온다. '마리와 스핀'. 둘은 콩가 리듬에 맞춰 서로 뒤엉켰다 풀어졌다 하는 격정적인 몸놀림으로 단번에 무대를 휘어잡는다.

"나는 원래 섹시하거나 관능적이지도 못하다. 그러나 살사를 출 때면 나도 모르게 그 허물을 벗는다. 춤이 그걸 끌어낸다. 그것에는 몸으로 표현하는 희열이 있다. 파트너(남자)와 함께 그 희열을 함께 할 수 있는 것. 나는 그것에 푹 빠져 산다."

마리의 직업은 연극 배우다. 이름은 문정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 출신이다. 연극계의 표현을 빌리면 '먹물' 배우다. 뮤지컬 '의형제' '록키 호러 쇼' 등에 출연하며 한창 발돋움하는 신예다.

문씨가 살사를 시작한 것은 두해 전이다. "집 근처 테크노바에 들렀다가 처음 접했다. 단번에 몸이 달아오르는 전율을 느꼈다. 살사의 주 리듬인 콩가와 우리 전통 가락이 비슷해 강한 끌림을 느꼈다." 그녀에겐 여섯살 때부터 한국 무용으로 단련된 춤에 대한 남다른 '감'이 있었다.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다리가 햇살처럼 현란하게 움직이는 고난도 기교인 '샤인(shine)'은 특기 중의 특기다. 입문 1년만에 세계 무대에서도 그걸 인정받았다. 지난해 10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로 살사 콩그레스'에 멕시칸 파트너와 함께 출전해 우승했다. 여세를 몰아 지금의 파트너 이원기씨와 오는 27~30일 홍콩 국제대회에 출전한다.

"살사는 기본 동작(베이직)만 배우면 재즈·힙합·레게 등을 뒤섞어 출 수 있는 무형식이 장점이다. 그래서 문외한이라도 능히 도전해볼 만하다."

살사는 흔히 쿠바가 원조로 알려졌다. 그러나 둘째 박자에 첫 스텝이 들어가는 쿠바 춤과 달리 우리는 첫 박자에 첫 스텝이 들어가는 미국(특히 LA)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현재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살사를 즐기는 인구는 줄잡아 2만명 정도다. 문씨, 아니 마리는 이들의 우상이다. 레슨과 이벤트 출연으로 돈은 벌지만, 연극을 포기하고 전업 댄서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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