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이슈] 대공 수사관들 고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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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를 잡던 내가 이젠 간첩의 우두머리를 경호해야 하는 입장이 됐습니다.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군요."

2000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서울과 제주를 방문한 김용순 노동당 통일전선 담당 비서의 신변보호를 맡았던 한 관계자는 당시 이런 말을 했다.

노동당의 대남공작 총책임자인 김용순을 맞이하는 행사에 대공 수사관이던 자신이 동원된 데 대한 당혹감을 토로한 것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4년여 동안 정부의 대공수사 조직과 인력은 상당부분 축소됐다.

국정원은 지난해 5월 국내담당 2차장 산하의 핵심기구인 대공정책실을 폐지됐다.

대공수사국 조직도 개편하면서 북한 또는 해외와 관련 없는 순수 국내 보안사범은 검찰과 경찰에 넘겼다. 대신 산업정보처 등을 신설해 해외 산업정보 수집과 국내 산업스파이 방첩활동에 무게를 실었고 국내파트의 남는 인원도 해외 쪽으로 돌렸다.

최근에는 국정원이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분위기가 더 뒤숭숭해졌다. 대공파트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부서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가 나오는데 신바람날 사람이 있겠느냐"며 "간첩사건을 해결하고 자랑스럽게 '한 건 했다'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상층부의 분위기가 산업보안 쪽에 실려있는데 공연히 간첩 잡는 일에 열성을 보이다가 눈치없는 사람으로 찍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일각에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특히 일부 젊은 수사요원은 적지 않은 갈등을 하고 있다고 한다. 관계자는 "해외파트의 경우 연수 등 적지 않은 이점이 있는데 공연히 '한물 간'대공수사에 매달려 있다 진급 등 장래가 불안해지지 않을까 해서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7월 468명의 동남아 지역 탈북자 집단입국 등 탈북 귀순자의 급증으로 대공파트 직원들이 정부의 합동신문에 매달려야 하는 것도 근무 여건을 어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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