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미의 한 지붕 두 종교] 4. 원불교 남편, 기독교 부인 권병준·고미경씨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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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84년 중매 결혼한 권병준(사진 (右)).고미경씨 부부. 남편은 원불교도, 부인은 장로교인이다. 남편은 어머니의 기독교 신앙을 이어받은 아내가 고맙고, 부인은 원불교를 믿고 성격이 변한 남편이 고맙다. 부인 고씨는 지금도 새벽기도와 금식기도를 번갈아 하며 기도를 쉬지 않고 있다.

"순복음교회에 다니다가 장로교 신자인 시어머님을 따라 장로교회를 나가게 됐는데 지난 20년간 예배와 기도를 통해 마음의 참 평화를 얻었고 구원까지 얻었습니다."

부인이 독실한 신앙인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고씨는 22년 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기도하는 훈련을 배워 나갔다고 한다. 그가 겪은 시련은 단순한 고부 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의 총에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았던 시어머님은 그 충격을 지우지 못한 채 환상에 시달리며 정신을 놓았다. 세월이 흐르며 생활은 안정됐으나 그때의 비극은 되레 선명하게 되살아나 시어머님은 사람 죽이는 소리를 내며 불안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기도했어요. 시어머님 덕분에 기도하는 훈련이 생겼고, 지금까지 기도의 힘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살아 움직이더군요. 우리에겐 죽을 때까지 시련과 환란이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 잘 이겨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부인과 다르게 남편은 매주 목요일 원불교 도봉 교당에서 마음공부를 한다.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신앙일지도 매일 작성한다.

"고등학생 때 원불교 학생회에 속했지만 그때는 원불교를 잘 몰랐어요. 3년 전 우연히 도봉교당 마음공부반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그간 마음을 닦은 덕인지 성격이 완전히 변했어요. 원불교에선 저같이 못난 놈도 인정해 주더군요. 사실 결혼 후 아내가 저를 인정해 주지 않아 밖으로 돌면서 아내를 무척 힘들게 했었습니다."

남편이 부인의 무릎을 어루만지며 미안함과 사죄를 동시에 전했다. 한때 성격이 괴팍했던 그는 마음공부를 시작한 후 급속히 온화하게 변했다. 부인은 남편을 바꾼 원불교가 궁금해 도봉교당 법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마음공부 중인 그에게 현재의 마음 상태를 묻자 그가 둥그런 원상을 그려보였다.

"사람은 마음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해요. 마음에는 온갖 게 들어 있지만 원래는 텅 비어 있습니다. 마음을 본다는 것은 '난 누구인가' 라는 화두와 직결되죠."

원불교도 남편은 어머니와 아내의 기독교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머니와 아내를 따라 교회 대소사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가족의 화목을 위해 겉으로만 인정하고 속으로는 반항이 컸어요. 그런데 원불교를 믿고 성경을 다시 보니 원불교 경전이 오히려 잘 읽힙니다. 마음공부를 통해 제게도 성령이 있음을 인정하게 됐어요. 지금은 고향에 안착한 기분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같은 한 곳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고향 사람이죠."

서울 미아동 숭인시장에서 건강원을 하는 그에겐 커다란 마음의 짐이 있었다. 살생을 금하는 계율이 있건만 직업상 흑염소.붕어 등을 죽여야 했다. 그는 이런 갈등으로 화병까지 얻었으나 마음공부로 새 생명을 얻었다.

"심고(心告.원불교에서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를 한 뒤 완전한 안정을 찾았습니다. 예전엔 죄짓는다는 생각으로 죽였지만 지금은 달라요.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 삶과 죽음은 하나 등을 느낍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와 너는 둘이 아니다는 점을 확실히 깨달었어요."

신앙만 달랐으나 이들 부부의 정이 끈끈하면서도 은은한 향처럼 피어올랐다. 부인이 오래 간직한 소원을 말했다. "이 사람이 언젠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길 기도해요. 하지만 강요는 안 합니다. 언젠가 제 기도가 응답받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죠. 남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을 더 사랑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우리는 종교가 둘이지만 마음은 하나랍니다."

김나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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