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음악이 먼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지난 23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막이 오른 살리에리의 오페라'음악이 먼저, 말은 나중'은 한 마디로 재미있다. 거의 대화체에 가까운 레시터티부를 우리말로 알기 쉽게 옮긴 것도 그렇지만 당시 오페라계의 폐단을 신랄하게 풍자한 내용이 오페라의 열악한 한국적 상황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남녀간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오페라와는 달리 톡 쏘는 맛이 작품 전체에 배어있는 작품이다.

국내 초연에다 국립오페라단이 제작하는 소극장 오페라여서 더욱 관심을 모은 이 작품은 오페라 제작과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극중극'형식을 띠고 있다.

제목만 보면 작곡가가 대본작가와의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등장인물 4명이 주고 받는 대화는 구구절절 오페라계의 고질적 병폐를 꼬집는다. 나흘만에 오페라 한 편을 만들어내라고 재촉하는 패트런, 미리 써두었던 자신의 작품을 다시 베끼거나 적당히 수정해 내놓는 것을 다반사처럼 여기는 풍토, 패트런의 인맥에 의해 배역이 결정되는 주역 가수, 프리마돈나의 출연료에 턱없이 못미치는 작품료….

주역 가수 선정과정에서 작곡가는 프리마돈나(소프라노)를, 대본작가는 연극배우(메조소프라노)를 각각 내세우지만, 두 쌍의 남녀가 사랑에 골인하는 진부한 내용은 아니다. 결국 두 사람이 한 작품의 희극과 비극 부분을 나눠서 연기하는, 해피 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오페라는 대본(드라마)과 음악, 주역과 조역이 조화를 이뤄야 가능한 예술이라는 무언의 메시지와 함께.

반주를 맡은 엘렉톤 앙상블은 오케스트라 못지 않는 다채로운 음색을 빚어낸다.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게 코믹한 연기를 펼친 바리톤 김진섭·홍성진 콤비와 탄탄한 발성과 다채로운 음색, 무대를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준 소프라노 박선영(토니나)의 활약이 돋보였다. '음악이 먼저'는 27일 막을 내리지만 서울국제소극장오페라 페스티벌은 3월 20일까지 계속된다. 02-586-5282.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