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길을 완성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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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포함시킨 '악의 축' 발언을 한 이후 조성됐던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일단 걷어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을) 침공할 의도가 없다"고 천명하고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거듭 제의했다. 북한은 하루빨리 대화 국면을 여는 결단을 내려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잠재적 폭발성과 불가측성이 높은 한반도 정세의 특수성에 상당한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양국 정상은 튼실한 한·미 동맹 관계의 강화를 기반으로 대량살상무기 문제 등에 관해 북한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데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가 방한 기간 중 북한을 자극할 강성 발언을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던 한국 정부와 국민을 안심시키는 자제력을 발휘한 배경일 것이다.

방한 전 북한의 재래식 무기 감축을 강력히 요구했던 부시가 재래식 무기가 한국을 위협하는 것은 잘못이라고만 언급한 데 그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국 정상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수출 문제의 해결을 미국의 몫으로 돌리면서 재래식 무기의 대처 방안에 대한 기술적 논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양국 정상이 이 문제가 남북 쌍방에 관련된 중장기 과제라는 데 인식을 공유한 결과라고 본다.

두 정상이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걷어내면서 북한에 대해 대화를 압박하는 유화적 국면을 조성한 것은 평가할 일이다. 부시의 세계 전략 및 남북한 정세에 대한 金대통령의 성의 있는 대응과 설득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짐작된다. 특히 부시 대통령이 도라산역에서 언급한 "평화의 길을 완성하자"는 주장에 대해 남북 어느 쪽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의 메시지를 냉철하게 분석, 대응해야 한다. 부시가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대화 국면의 기조를 열면서도 북한 정권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 전혀 변화가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권에 대한 미국의 의혹과 불신을 씻을 수 있는 첫 걸음이 대화 재개밖에 없다는 점은 너무나 명확하다. 부시는 서울 방문에서 북·미 간 대화 재개 이후의 반대급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북한 정권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 식량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북·미 간 현안이 평화적으로 해결되는 기틀이 마련되면 정치·경제적 지원이 뒤따를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金대통령과 정부도 화급한 불을 껐다는 데 안도하지 말고 한·미 동맹 관계를 심화하면서 더 이상 대북 정책을 놓고 미국과 엇박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안정적인 관리 체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실효적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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