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실태 평가… 제도개선에 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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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공정거래위는 올해 업무계획의 방향을 '기업과 함께 하는 경쟁정책, 국민과 함께 하는 소비자정책'으로 정했다. 이남기 위원장은 특히 소비자정책을 강조했다.국민의 정부 중반까지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직접 단속하던 것에서 소비자 후생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올 업무계획에 '시장 여건에 적합한 대기업정책 추진'이라고 적는 등 예년보다 표현이 부드럽다. 재벌정책의 변화로 볼 수 있나.

"여·야·재계와 협의해 지난해 말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등 개선방안을 마련했기 때문에 이번에 재벌정책은 특별히 부각하지 않았다."

-시장 여건에 적합한 정책이란 무슨 뜻인가.

"그간의 집중적인 조사 결과 기업 스스로 부당내부거래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시장질서와 기업 행태의 변화 정도를 감안해 보완할 것은 보완하고, 원칙을 지켜 나갈 것은 지키겠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그동안 추진해온 일을 마무리하겠다."

-그렇다면 기업들로선 올해 공정위 조사에 대한 걱정은 덜해도 되나.

"기업들이 스스로 알아서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제가 있어 필요할 경우 조사는 한다. 상반기에는 우선 급한 것이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관련 분야의 공정거래질서 확립이다. 협회를 통한 담합이 자주 나타나는 숙박·음식·여행업 등을 집중적으로 살필 방침이다."

-경기회복은 결국 기업의 투자에 달려 있다. 출자총액제한 등 기업투자와 관련된 규제를 더 완화하거나 폐지할 의사는 없나.

"4월부터 개정된 공정거래법이 시행된다. 재계는 미흡하다지만 시민단체에선 재벌정책을 포기하는 거냐고 따진다. 그동안 기업 경영의 투명성은 상당히 진전됐지만 지배구조 개선 문제는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다. 출자총액제한은 주식 소유를 제한하는 것인데, 상당부분 출자 규제가 풀렸다. 자동차 회사가 엔진이나 페인트 등 관련 회사를 만드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관련이 없는 쪽에 투자할 때 총액한도를 순자산의 25%까지 묶겠다는 정도다. 이는 최소한의 규제다. 이것 때문에 투자를 망설인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마냥 끌고 갈 제도는 아니지 않은가.

"물론 한없이 갈 제도는 아니다.이제 공은 재계로 넘어갔다. 재계에선 아직도 증권 분야 집단소송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여·야·정(與野政)이 1년 가까이 논의해 합의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불만족스럽다고 했는데 그룹에 따라 다르다. 기업들은 30대 그룹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데 대해 불만이다. 잘하는 기업에는 메리트를 주는 것도 방법인데.

"올해 재계 및 연구기관 등과 합동으로 대기업의 경영실태를 평가할 방침이다. 대기업집단의 출자와 거래 관계·경영지배구조 개선상황 등을 평가해 그 결과를 놓고 제도를 개선할 것이 있으면 하겠다."

-지난해 재정경제부와 증권거래소가 하겠다던 기업 지배구조 실태 조사와 비슷한가.

"그 쪽은 평가원을 설립해 주기적으로 평가하려고 했던 것으로 안다. 우리는 올해 안에 한차례만 평가한 뒤 제도 개선에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30대 그룹 지정 제도 또한 아예 없애든지 지정 대상을 5대 내지 10대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계열사간 빚보증과 부당지원 등 잘못된 행태는 하위 집단일수록 더 심하다. 따라서 지정 대상을 축소하거나 제도를 없애는 것은 이르다. 이 문제는 결국 기업의 행태 변화에 달려 있다. 시장 규율이 확립되고 기업의 행태가 바뀌면 당장 내년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5년, 10년 뒤가 될 수도 있다."

-공정거래위는 '기업검찰'로 불린다. 최근 공정위가 사법경찰권(강제조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자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재계가 반대한다.

"공정위는 압수·수색권이 없다. 조사를 나가 자료를 달라고 해도 안주면 그만이다. 선진국에선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형벌을 가하는 등 공권력을 행사한다.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과태료를 매기는 행정처벌에 그치고 있다."

사진=김형수 기자

정리=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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