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만화영화의 폭력·섹스는 큰 문제" : 베를린영화제 황금곰賞 미야자키 감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제52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센과 지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한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61)감독은 뜻밖의 수상소감을 쏟아냈다.

그는 19일 도쿄(東京)에서 외신기자들과 한 회견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가운데는 폭력과 섹스가 난무하는 게 더 많아 큰 문제"라고 말했다.

또 "일본 정부가 애니메이션을 산업화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으나 해외의 평가는 아직도 '일본 애니메이션=저질'이 주류"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보느라 하루종일 TV에 매달려 있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일본 어린이들이 만화·TV·게임에 너무 매달려 현실감각을 잃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제동을 걸지 않으면 일본 민족은 건강을 잃을 수도 있어요. 저도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만들어 팔고는 있지만 겉포장에 '생일에만 보여주세요'라는 부모용 경고문을 쓰고 싶을 정도입니다."

황금곰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그의 작품은 유럽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그는 외국 관객의 반응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작품을 만들 때 일본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해외 관객의 반응은 그저 부록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에 일본 민족주의가 배어 있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격하게 반론을 제기하면서 "민족주의와는 관계없이 지역적이고 민속적인 것을 잘 표현해야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수상 소감을 묻자 그는 "외국 영화상이 일본 영화상보다 중요한 것도 아닌데 60줄에 상 받았다고 좋아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래서 영화제가 열린 베를린에 가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기는 하나, 제작을 하려면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하므로 외부에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센과 지히로…'는 17일 현재 일본에서 2천2백69만명의 관객과 2백93억6천만엔의 흥행 수입으로 '타이타닉'의 최고 기록을 깨뜨렸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