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子가 함께 전주大 졸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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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대학의 학사모를 나란히 쓰게 된다.

전북 전주시 중화산동에서 중화요리점 '이중본'을 운영하는 이철재(李哲宰·49)씨와 아들인 충재(忠宰·23)씨가 그 주인공.

오는 22일 열리는 전주대 졸업식에서 아버지는 부동산학과, 아들은 영문과의 졸업장을 받는다.

20여년간 음식점을 운영해 기반을 잡은 李씨는 1997년 초 대학 입학을 결심했다.

"고교 졸업과 함께 책을 손에서 놓은 지 25년이나 돼 자신이 없어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한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배움에 나서라'며 진학을 적극 권했습니다."

아버지 李씨는 고령자·사업자 등을 위한 특례입학을 거부했다. 그는 마침 고교 3학년이 된 아들과 함께 1년 동안 학업에 열중해 부동산학과에 합격했다.

늦깎이 대학생 李씨에게 아들은 든든한 동기생이자 휼륭한 개인교사였다.

영어 단어를 외워도 돌아서면 뜻이나 철자를 잊어버리기 일쑤라 아들에게 수시로 휴대폰을 걸어 물어보았다. 컴퓨터도 자판부터 워드·e-메일·인터넷 등에 이르기까지 틈나는대로 아들에게 배웠다.

좋은 과목은 함께 수강했고, 시험 때면 필기한 노트를 서로 빌려 주었다.

한번은 종일 계속된 강의에 지쳐 몸살로 앓아 누운 李씨가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라는 뜻을 비췄다. 이에 아들은 "아빠와 함께 학사모를 쓰고 싶다"며 격려했다. 결국 위기를 넘겼다.

아들 충재씨는 "동기생 아빠가 쑥스럽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웠다"며 "항상 얘깃거리가 많아 친구같은 부자(父子)관계가 형성돼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고 말했다.

둘다 운동을 좋아해 체육을 부전공한 이들 부자는 졸업과 동시에 체육학 석사과정도 나란히 밟게 된다. 李씨는 전주대 대학원에, 충재씨는 한양대 대학원에 합격했다.

李씨는 "내친김에 박사과정까지 마쳐 골프 꿈나무를 육성하는 지도자로 나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이 때문에 배움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늦었다고 주저하지 말고 과감히 도전하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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