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태만으로 날린 30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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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 세무신고를 제때 하지 않아 30억원을 날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빚어졌다. 수도권 고교평준화 지역의 신입생 재배정 소동과 함께 국민의 정부 임기 말에 나타나고 있는 공직사회의 기강 해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공단이 문 가산세는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공단은 산재근로자를 치료한 의료기관에 2000년도분 진료비를 지급하면서 원천징수한 소득세 관련 자료를 마감시한(2001년 2월 말)을 석달이나 넘겨 제출했다가 관할 세무서에서 가산세 30억원을 부과받았다. 이런 업무는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해마다 2월 말까지 처리해온 일상업무다.

30억원이 어떤 돈인가. 이땅의 모든 근로자·기업주가 꼬박꼬박 내는 고용보험료와 산재보험료로 조성된 돈이라 세금이나 다름 없다. 공단은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1인당 5백만원 한도 내에서 생계비를 융자해주고 있다. 일상적인 세금 신고 업무만 제대로 했다면 이런 체불 근로자 6백여명의 생계를 더 도와줄 수 있었을 것이다.

공단측은 담당 직원을 해직하고 국세청 등에 가산세 반환을 요청하고 있다지만 이 정도로 수습될 문제가 아니다. 우선 상급기관인 노동부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문책이 있어야 하며, 연간 4조원 안팎의 보험료를 관리하는 공단의 업무와 감독체계도 재점검해야 한다. 나아가 공직사회의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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