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노무현 갈등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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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경선 후보인 이인제(李仁濟·얼굴(左))·노무현(盧武鉉·얼굴(右))고문 간의 대립과 갈등이 노골화하고 있다. 盧고문의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李고문에 대한 공격이 시발점이다.

盧고문측 유종필(柳鍾珌)특보는 15일 "李고문은 한나라당이 폐기한 사람"이라고 한 뒤 "이는 盧고문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李고문의 (신한국당 대선 후보)경선 불복 문제를 그냥 넘어가면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바꿔야 한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떨어지자 당을 뛰쳐나온 사람을 민주당 후보로 내세우면 당은 껍데기만 남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공세의 수위가 한나라당 논평을 뺨칠 정도다.

그러자 민주당 선관위(위원장 金令培)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 선관위 박주선(朴柱宣)공명선거위원장은 "지난 14일 제주에서 盧고문이 李고문에 대해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는지 확인 중"이라면서 "비방인지 비판인지 본인에게 직접 확인한 뒤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경고가 먹힐 분위기가 아니다.

두 후보간 갈등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설 연휴 기간엔 민주당 당원·대의원들에게 李고문을 비방하는 편지가 배달됐다. 또 『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부제:노무현 필승론)는 책이 민주당 기자실에 배포되기도 했다.

의혹의 시선이 盧고문측으로 쏠리자 柳특보는 "우린 그런 식으로 정치 안한다"면서도 "책 내용엔 틀린 말이 하나도 없더라"고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李고문측의 전용학(田溶鶴)대변인은 "정치인의 품격에 관한 문제"라며 "대의원들의 마음을 그런 식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李고문의 측근은 "경선을 이인제 대 노무현 구도로 만들어 표를 모아보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DJ(金大中)와 YS(金泳三)의 갈등처럼 서로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지면 화해가 어렵다"고 걱정했다.실제로 盧고문은 "李고문이 민주당 후보가 되면 그를 위해 뛰기가 막막하다"고 속내를 드러낸 적이 몇번 있다.

두 사람의 인연과 악연은 오래됐다.

둘 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했고, 늦은 나이에 고시에 합격해 대전에서 짧은 판사생활을 했으며 1988년 13대 총선에서 YS의 공천으로 정치를 시작한 것도 똑같다. 5공 청문회를 통해 정치적으로 성장한 것도 비슷하다.

다만 李고문은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노동부 장관·경기도 지사·대선 후보 등을 거쳤지만, 盧고문은 고졸 출신으로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다가 정치권에 들어갔고 낙선도 여러 차례 하면서 오뚝이처럼 재기했다.

국회의원 시절 두 사람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했는데 이때 서로의 의정 스타일에 크게 실망했다는 것이 양측의 얘기다. 盧고문은 "나는 3당 합당 때 끝까지 반대했다"며 "자기 정체성을 지켜온 사람에게 역사가 한번도 제대로 평가해본 적이 없다는 데 대해 이글거리는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97년 이인제씨가 대선에 출마해 당선되는 걸 막기 위해 대선 출마를 결심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YS와 JP(金鍾泌)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다.

하지만 李고문은 "3당 합당이 없었으면 문민정부·국민의 정부 등 민간 정부로 이어지는 그 이후의 역사가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3金씨에 대해서도 "그들의 업적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둘 다 자존심이 강하고 당돌하다고 할 정도로 대담하다"며 "李고문이 냉정하고 현실적이라면 盧고문은 정열적인 이상추구형"이라고 분석했다.

김종혁·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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