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의 축' 이후 한반도 정세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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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며 밀어붙였던 압박 전략은 얼마나 효과를 봤을까. 또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부시 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열흘 동안 조금씩 변화한 북한의 태도와 미국측의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 등을 점검해 본다.

|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열흘 동안 북한은 적지않은 태도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처음에는 "사실상의 선전포고"라고 반발했지만 슬그머니 "미국과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며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9일 "미국이 초강경 처방에 대해 평양이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변화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북한이 클린턴 행정부 때처럼 '벼랑끝 전술'로 미국과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유환(高有煥·북한학)동국대 교수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보며 북한도 1990년대 중반 핵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라며 "전쟁과 협상 중 택일을 강요받는 북한 입장에서 대화 테이블에 나오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회갑 행사가 오는 16일로 잡혀있는 데다 외무성·군부(軍部) 등의 입장도 정리돼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20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지켜본 뒤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부시의 강성 발언에 당황하던 정부도 한·미 대북공조를 챙기는 등의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일단 '악의 축' 발언 파장을 수습한다는 복안이지만, 부시 대통령이 또다른 강성발언을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낙관도, 비관도 시기상조라는 뜻이다. 하지만 향후의 북·미관계는 결국 대화기조에 무게가 실린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산가족 상봉 재개나 7차 남북 장관급 회담 개최 등 남북관계의 물꼬가 터질 것으로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통일연구원 전현준(全賢俊)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미국의 예봉을 피하려면 남북대화 카드가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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