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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2기 외교 - 조심스런 낙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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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새로운 외교 수장으로 임명된 콘돌리자 라이스가 선보일 외교 컬러는 무엇일까. 부시 대통령의 친정(親政)체제가 강화됨으로써 미국의 일방주의가 한결 거세지지 않을까.

라이스는 전임 콜린 파월에게 없었던 비장의 정치적 무기를 갖고 있다. 지난 4년간 파월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별반 신임을 얻지 못했다. 반면 백악관 안보보좌관 출신인 라이스는 부시 대통령의 외교.안보 가정교사로서 남다른 총애를 받아왔다. 파워게임 측면에서 이는 라이스에게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 우선 미 국방부부터 파월 시절처럼 국무부를 무시하기 힘들 것이다. 성격상으로도 라이스는 국방부의 월권을 그냥 넘길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스탠퍼드대 시절 교수사회에서 깐깐한 교수로 정평이 났었다. 라이스는 파월보다 강력한 실세 장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백악관 안보보좌관 시절 라이스는 자신의 견해를 말하기보다 "부시 대통령은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이는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실제로 두 사람의 외교적 이념이 비슷하다. 부시와 라이스는 필요할 경우 군사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또 이들은 중동의 민주화 도미노 이론도 신봉하고 있다. 이라크 같은 중동의 한 국가가 민주화될 경우 이웃 국가도 자연스럽게 민주화된다는 논리다. 이들은 현실적으로 100% 민주화가 힘들더라도 선거.개혁.법치 같은 민주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긴밀한 부시-라이스 관계를 고려할 때 부시 2기의 백악관과 국무부는 외교문제에 대해 한목소리를 낼 것이다. 파월 시절에는 종종 국무부와 백악관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부시와 라이스는 다자주의에 대한 입장도 비슷하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맹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미국의 결정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할 생각은 없다.

외교에 대한 부시와 라이스의 인식이 비슷하다고 해서 부시 2기가 이라크전으로 상징되는 부시 1기의 속편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역사적으로 미국 대통령들은 2기에 큰 방향전환을 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한때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불렀지만 집권 2기에서는 유럽에서 퍼싱 미사일을 철수시키고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손을 잡았다. 빌 클린턴도 마찬가지였다. 집권 1기 시절 그는 군사력 동원을 꺼렸다. 반면 재선에 성공한 클린턴은 코소보전에 미 공군을 투입해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축출했다.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유권자보다 역사를 의식하는 법이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4년간을 돌이켜보면서 배워야 하는 교훈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이라크전보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이 훨씬 수월했다는 것이다. 그 차이는 극명하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의 경우 동맹국과 국제사회의 지지가 있었지만, 이라크전 땐 몇몇 국가만이 미국을 마지못해 지지했을 뿐이다. 둘째, 미국의 힘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임에는 틀림없지만 미국이 전 세계 모든 일에 항상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미국 경제도 조짐이 좋지 않다. 달러화 가치는 추락하고 있으며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미국은 유럽.중국 등 주요 교역 상대국들과 인내를 갖고 협력하는 수밖에 없다.

종합하면 집권 2기 부시-라이스가 이끌 대외 정책은 1기 때와 차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1기보다 한결 온건해질 것이며 경제적으로도 무역 파트너들의 눈치를 보아가며 움직일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조짐은 그렇다. 눈을 크게 뜨고 부시의 집권 2기를 지켜보자.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정리=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