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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7일자 이경기씨 글에 대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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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창동 감독이야 노무현 대통령이 장관으로 지명했었으니 노 대통령에게는 이경기씨가 말한'코드'에 맞는 분이겠지만, 그것이 어떻다는 말인가? 어차피 이 감독이 누가 봐도 이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감독이라면 대체 그것이 무슨 잘못이 있는가. 몇 장의 DVD를 어떻게 고를 것인가? 물론 나는 어떻게 골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DVD 몇 장을 고르기 위해 공청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 감독이 아닌 다른 한 사람의 작품만을 줬다고 치자. 대체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에는 이창동 감독 말고도 많은 우수한 감독이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방도시의 한쪽에서 이름없이 살아가는 나도 영화 한 편으로 한 나라의 속사정을 단언하지 않는다. 어차피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라는 것은 인간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폴몬티'로 우리가 영국 영화의 성숙함을 보고, 범죄자가 징계받는 모습을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영화예술만의 장점이라면, 감독들이 그처럼 고뇌하며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을 것인가. 하물며 안동까지 왔다간 여왕할머니가 이분이 말하는 이 어두운 영화를 보고, 보기보다는 한국이 어둡다고 탄식을 한다면 이창동 감독도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때 자유를 달라고 부르짖은 적이 있었다. 물론 영화나 기타 공연에 있어서 말이다. 영화나 노래의 가사 검열이 누가 봐도 검열나리들의 아이큐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의 시절도 우리는 겪었다. 사람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달콤한 것, 소시민적인 것, 죽음을 이야기하고, 배신을 이야기한 것.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설마하니 이분이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것 같은, 대한민국을 선전하는 영화를 보내면 우리의 국력에 조금 보탬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분이 걱정하는 어두운 영화를 보냈더라도 여왕할머니의 관심을 끌었다면 여왕님은 다른 우리 영화에도 관심을 가지겠지. 영화 한 편으로 한 나라의 문화를 다 소개할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나는 우리가 그런 나라가 아니길 바란다. 수많은 작품 중에 내가 관심 있게 봤었고,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작품을 몇 가지 권했다고, 그것을 코드니 한다면 대통령도 여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밝고 명랑한 것이 아무리 깊은들, 슬픔보다 깊을까? 심신이 편안하면 인간은 사유를 멈춘다. 그러한 영화가 차라리 인간을 한 번 더 뒤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것은 그냥 넘어가자. 삼거리에 집을 지으면 삼년이 지나도 석가래 하나 못 올린단다. 생각이야 너 나가 다 다르다. 정말로 이야기해야 할 때 사정없이 이야기하고, 이런 것을 그냥 넘어간다면 우리가 비판의식이 없다고 손가락질 받을 것인가?

장호준 수중사진가·대구시 북구 검단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