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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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한권의 책을 본다는 것은 두께의 삶을 산다는 일입니다.
어려서 만났던 어린 왕자는 아직도 내 인생의 사막에서 길을 찾고 있습니다.
십대에는 이중섭 평전을 읽으며 화가의 꿈을 키울 수 있었고 '난·쏘·공'에서 불평등한 세상을 엿보았지요.
이십대에는 창비와 전환시대의 논리, 프란츠파농과 마르크스를 통과하며 분노의 열정으로 살았지요.
삼십대에는 최순우를 만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 보기도 하고, 녹색평론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지요.
지금 읽는 어느 책들도 십 년 후 쯤에는 내 삶의 지침이 되기도 하겠지요.
책은 세상을 담는 그릇이지요. 종이에 쓰여지진 않지만 누구나 자신의 책을 만들면서 사는 것이 아닐까요?

책속에서 길을 만났고 책 속에서 길을 잃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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