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美외교 문제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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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필두로 미국 고위 관리들이 연일 북한을 두들기는 가운데 정부가 한승수(韓昇洙)외교통상부 장관을 어제 돌연 교체했다. 갑작스러운 외무장관 교체로 한·미간 외교전선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과 대북문제를 조율하기로 한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보름여 앞둔 시점에 외교 수장(首長)을 바꾼 것이 적절했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번 개각 당시 의원 겸직 장관의 복귀 원칙에 따라 韓장관의 경질도 결정했지만 2월 2일로 예정됐던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 때문에 부득이 인사를 늦췄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韓장관의 교체는 최근의 한·미간 외교현안에 대한 문책성 경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韓장관은 외교부 장관과 유엔총회 의장 겸직으로 인한 업무 과다로 지난해 역사교과서 문제 및 꽁치조업과 관련한 대일(對日)외교, 한국인 마약사범 처형문제와 관련한 대중(對中)외교 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진작부터 있었다. 따라서 그의 경질은 뒤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부시의 방한을 코앞에 둔 중요한 시점에, 더군다나 미국의 북한 때리기가 기승을 부리는 시점에 하필 경질해야 했는지는 납득이 잘 안된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한 연설 이후에도 파월 국무장관, 럼즈펠드 국방장관,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잇따른 대북 강성발언을 유화시키는 데 실패한 책임을 물어 그의 경질을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결행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일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양측간에 대북정책을 놓고 현격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는 일각의 관측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 시점이다. 더구나 신임 장관은 미국통과 거리가 먼 인사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 정부가 대미 불쾌감을 외교장관 경질로 표출한 것이라고 해석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그렇지 않아도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꼬여 있는 한·미관계에 한층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커진다. 정부는 이런 점이 대미외교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비상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미 양측이 대북정책을 놓고 틈이 벌어지는 사태가 장기화하는 것은 어느 쪽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이 북한 때리기를 계속한다면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햇볕정책도 빛을 잃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상호간 입장을 원만하게 절충하고 부시 진영의 핵심 인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인사들을 미국에 급파하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성정책이 한반도 평화에 위해(危害)가 되는 현실에서 부시 방한 이전에 그 간극을 메우는 작업이 최우선 과제다. 특히 대미외교는 감정 차원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국익 차원에서 신중히 다룰 국가 대사임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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