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들어간 은행합병說… 물밑은 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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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한은행과 한미은행의 합병 협상이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은행과 제일은행의 합병 협상은 주춤한 상태나 신한·한미은행의 협상이 급진전될 경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이 "연내 합병은행이 추가로 나올 것"이라고 밝히면서 달아올랐던 은행 합병설이 올들어 쑥 들어갔지만 물밑에서는 밀고 당기기가 한창인 것이다.
은행들로선 합병 협상을 마냥 미룰 순 없는 실정이다.국민은행이 합병은행의 위력을 갈수록 발휘할 것이고 6,7월께 우리금융의 자회사인 한빛·경남·광주은행의 통합이 결정되면 다른 은행들에 대한 압박이 한층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김병주 서강대 교수는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은행들이 알아서 합병을 추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격 문제로 압축된 신한·한미은행 합병=신한은행의 지주회사인 신한금융이 한미은행의 대주주인 칼라일과 접촉 중이다. 신한금융 고위 관계자는 "칼라일의 요구 중 수용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합병은행의 경영진 구성에선 칼라일측이 원하는 방향을 따르고 인수 가격은 깎는 방식으로 절충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잘 되면 이달 안에 소식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미은행이 협상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데다 하나은행과 합병 직전까지 갔다가 막판에 결렬된 전례 때문에 현재로선 성사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계의 시각이다.
◇시간 끌며 득실을 저울질하는 제일·하나은행=서로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가 더 불리해질 것이라며 머리싸움을 하고 있다. 로버트 코헨 제일은행장은 합병설을 일축하며 덩치부터 키운 뒤 생각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었다.
이에 대해 하나은행측은 "시간이 흐를수록 제일은행을 인수하려는 곳이 줄어들 것"이라는 반응이다.
하나은행의 한 임원은 "합병은 주주의 이익을 다루는 문제"라며 "신한은행과의 합병은 주가가 초기에 오른 뒤 하락할 가능성이 있고, 한미은행과의 합병은 어렵다는 결론을 이미 냈으며, 서울은행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표류하는 서울은행 매각=서울은행을 우량은행에 합치자는 당국의 희망이 우량은행들의 거부로 무산되면서 '동부그룹 컨소시엄'의 인수 가능성이 부상하고 있다.
컨소시엄측은 공적자금 투입 은행을 민영화하는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있으며, 동부그룹의 보험·증권 부문과 연계해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컨소시엄의 주축인 동부그룹이 반도체사업 진출 때문에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은 데다 특혜 시비가 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매각을 결심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서울은행의 처리 방향은 조만간 결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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