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택'검찰 대책'모의한 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형택(李亨澤)씨가 지난해 이용호(李容湖)씨가 구속된 직후부터 검찰 수사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검찰 수사에 영향을 끼쳤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검찰의 비호 의혹이 밝혀질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검팀은 이형택씨 등이 수사중단 압력을 넣었는지를 수사 중이지만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데다 일부는 진실을 적극 은폐하고 있어 사실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드러나는 수사중단 압력 의혹=이형택씨는 신승남(愼承男)전 검찰총장이 동생 승환(承煥)씨가 이용호씨 회사에 취직하고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지난해 9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하기 1주일 전께부터 이미 상세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지난 2일 임운희(林雲熙)변호사에 대한 조사에서 "이형택씨에게 지난해 9월 12~13일께 '이용호씨가 승환씨 계좌에 스카우트비로 5천만원을 입금한 통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특검팀은 林변호사에게서 愼전총장의 약점을 전해들은 이형택씨가 통장 사본을 입수해 愼전총장과 막역한 사이였던 김형윤(金亨允)전 국정원 경제단장을 통해 동생문제를 거론하며 수사중단 또는 축소수사 압력을 행사했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검팀은 또 이형택씨가 이용호씨의 구속 직후부터 보물 발굴사업에 참여했던 최모씨 등을 통해 林변호사 등을 소개받아 검찰의 수사상황에 대비했던 정황도 포착하고 그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형택씨는 이같은 정황에 대해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愼전총장은 "김형윤 경제단장과 알고 지내는 사이지만 어떤 수사중단 압력도 받은 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석연치 않은 검찰 수사=대검 중수부는 이용호씨가 승환씨에게 5천만원을 입금한 통장기록을 특검팀에 넘기면서 아무런 관련 기록을 남기지 않아 그 배경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용호씨의 부인 최모씨가 '승환씨 계좌에 돈을 입금한 통장을 林변호사에게 건넸다'고 진술한 기록이 대검에서 넘겨받은 자료에 포함돼 있다"며 "그러나 이를 설명하는 어떤 기록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처음엔 통장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으며 최근에야 언론 보도로 이용호씨가 이 통장을 근거로 자신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는 압력수단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따라서 대검 중수부는 관련 자료를 누락한 채 특검팀에 넘긴 것은 이후 진행될 특검팀이 통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대검 중수부가 당시 승환씨 등에 대한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한 배경에도 통장을 근거로 愼전총장이 이형택씨로부터 수사중단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을 감지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2000년 서울지검 수사팀에 대한 이용호씨 비호의혹을 수사한 특별감찰본부에서 이용호씨에게서 통장에 관한 진술을 확보하고도 조서 등에 기록조차 남기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특감팀 관계자는 "당시 특감본부의 수사대상이 아니어서 깊이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특검팀은 "설사 그렇더라도 이용호씨의 진술을 애써 누락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의구심을 표시했다.
장정훈·김승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