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알고 보니 또 하나의 박지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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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오른쪽)가 스페인의 후안 카프데빌라와 볼다툼을 하고 있다. 미드필더 김정우는 협력수비와 위력 적인 중거리슛으로 박지성이 빠진 스페인전에서 맹활약했다. [인스브루크=연합뉴스]

박지성의 가장 큰 미덕은 헌신과 희생이다. 대표팀에 박지성을 쏙 빼닮은 선수가 있다. 스페인과의 평가전은 김정우(28·광주 상무)라는 ‘숨어있는 보석’이 흙먼지를 털고 광채를 발휘한 경기였다.

그는 상대 흐름을 막고, 적절한 곳으로 패스를 연결시키며,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쏘았다. 김정우가 있었기에 한국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세스크 파브레가스, 사비 알론소, 사비 에르난데스 등 초특급 미드필더가 포진한 스페인과 중원에서 힘겨루기를 할 수 있었다.

경기 직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김정우는 넋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경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어떤 플레이를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눈부신 활약을 펼쳤는지 모르고 있었다. 도리어 상대 미드필더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듯 어두운 얼굴이었다.

김정우는 2003년 A매치에 데뷔해 55경기에 뛴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인터뷰가 무서워 벌벌 떨 정도로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다. ‘허정무 감독이 김 선수의 플레이에 대해 칭찬을 많이 했다’는 말을 건네자 비로소 김정우의 표정이 풀렸다. 허 감독은 “제 몫을 다해주는 선수다. 김정우가 뛰지 않았던 벨라루스전과 김정우가 뛴 스페인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라”고 칭찬했다. 중앙수비수 조용형도 “수비형 미드필더 김정우가 앞에서 미리 막아줘서 수비하기가 너무 편했다”고 말했다.

김정우는 대표팀에서 기성용과 더불어 중앙 미드필더를 맡는다. 소속팀 셀틱에서 수비력 부족으로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던 기성용이 마음껏 공격 가담을 할 수 있는 것도 김정우가 뒤에서 든든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울산 현대가 K-리그에서 우승했을 때 대부분 팬들은 스페인에서 복귀해 팀을 정상으로 이끈 이천수에만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 김정남 울산 감독은 “김정우의 투쟁적이고 헌신적인 뒷받침이 얼마나 중요한지 팬들이 잘 몰라준다”고 아쉬워했다.

1m83㎝, 68㎏의 김정우는 깡마른 체구다. 지난해 성남에서 주장을 맡은 후에는 ‘뼈주장’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치아가 부실했는데 최근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후 조금씩 살이 붙으며 힘이 좋아지고 있다.

“축구라는 경기의 특성상 모두가 스타가 될 수 없다. 내가 할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팀이 승리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김정우는 플레이 스타일은 물론 축구 철학까지도 박지성과 닮았다.

 인스브루크(오스트리아)=이해준 기자



김정우

- 1982년 5월 9일
- 1m83cm·68kg
- 광주 상무
- A매치 55경기·4골(허정무팀서 23경기 출전·3골)
- 월드컵 출전 경력 없음
- 각오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에는 이긴다.”
- 예상 성적 “16강은 간다. 8강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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