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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특색의’ 책임대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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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1990년 이래 해를 거르지 않고 천안문 사태 추모 행사가 열리는 곳은 홍콩뿐이다. 97년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중국과의 경제통합 속도를 높여 ‘중국의 홍콩’으로 탈바꿈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천안문 사태를 눈치 안 보고 거론할 수 있는 유일한 중국 땅이기도 하다. 홍콩의 이런 자유는 일국양제(一國兩制: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돌려받으면서 중국은 일국양제와 ‘홍콩인의 홍콩 통치’ ‘50년간 불변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요즘 홍콩에선 일국양제의 시효가 끝나는 37년 후를 둘러싼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야당 진영에선 행정장관(총리 격)의 직선제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베이징의 지도부는 모호한 입장이다. 홍콩인들은 일국양제 기간 동안 서구식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홍콩의 정치 유전자가 중국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중국 당국은 37년이 지나면 바로 공산당 정권의 통치 시스템 안으로 홍콩이 흡수될 수 있도록 지배력을 키워가고 있다.

일국양제에 대한 회의감도 나오고 있다. 1~2일 카우룽에서 열린 ‘양안(중국·대만)과 홍콩·대만관계’ 세미나에서 한 참석자는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을 이론적으로 합리화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처럼 홍콩에 허용된 민주주의 실험도 결국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경제적 성공을 바탕으로 구축한 중국 특색, 즉 차이나 스탠더드에 대한 자부심은 대외관계에서 강하게 표출된다. 지난달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 이후 한·미·일은 역내 책임대국으로서 중국의 리더십을 기대했지만 중국은 “과학적·객관적 조사결과가 나와야 한다”며 사태를 뭉개고 있다. 국제사회가 승인한 조사결과인데도 중국이 수용할 수 있는 과학적·객관적 결과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중국 특색의 천안함 사태’라도 있다는 말인가.

중국은 책임대국을 자처하며 역내 리더로서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의 실상이 중국 특색의 책임대국에 지나지 않는다면 중국에 리더의 책무를 기대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무턱대고 북한 감싸기를 했을 때 중국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국제공조에 참가할 때보다 더 크게 나오도록 상황을 관리하면서 중국이 계산서를 다시 뽑기를 기다리는 게 ‘중국 특색의 외교’에 대한 대처법이 아닐까.

정용환 홍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