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청문회가 국가발전 저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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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한동(李漢東)총리가 '5공청문회가 국가발전을 저해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역사의식이 결여됐다'는 비판이 몰리는 것이다. 그는 엊그제 한 초청강연회에서 "88서울올림픽 이후 굉장히 선진화돼 가던 우리 한국, 그것이 무엇에 의해 망했는가"라고 반문한 뒤 "그해 10월부터 시작된 국회에서의 과거 청산을 위한 각종 청문회 분위기에 국민이 휩싸여 돌아가면서 우리가 이룩한 엄청난 서울올림픽의 의미를 우리 스스로 전부 짓밟았다"고 개탄했다. 그는 "그런 우(愚)을 우리가 범했다"며 거듭 유감을 표시했다.
이번 개각에서 다시 유임돼 지탄을 받는 李총리이긴 하지만 그의 발언 중엔 경청할 부분도 물론 있다. 발언 후에 한 자신의 해명처럼 청문회 의미를 깎아내리기보다는 서울올림픽의 성과를 강조하려고 한 점은 수긍이 간다. 그리고 실제 청문회 과정을 거치면서 올림픽으로 고양된 국가에너지가 적잖이 손상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5공청문회가 국가발전을 해쳤다는 그의 결론은 일국의 총리로선 역사의식의 심각한 결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역사 속엔 청산할 것과 발전시킬 것이 혼재한다. 발전만을 위해 청산할 것을 미룬다면 이것이 두고두고 역사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그는 간과하고 있다.
그는 5공 때 민정당 사무총장·원내총무를 지냈고 당시 DJ의 평민당은 청문회를 적극 주도했었다. DJ정권의 총리가 DJ를 공격하기 위해 이런 발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조성될 발전의 계기가 각종 게이트로 인해 식어버리거나 퇴색해선 안된다는 얘기를 하려다 빗나간 게 아니냐는 추론도 나올 수 있다. 과거지사인 권력형 비리 규명에나 매달리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는 간접적 의미전달이 느껴진다. 그러나 국운(國運)융성도 중요하지만 비리척결 또한 역사와 국가발전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긴요한 과제다. 발언의 진의와 관계없이 李총리는 이 점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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