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법 변칙 상정 시도… 아수라장된 법사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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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오후 법사위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위한 사회권을 차지하기 위해 여야 의원들이 위원장석 주변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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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를 선언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 둘과 형법 개정안을 상정합니다."

6일 오후 4시11분 국회 법제사법위 소속 열린우리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은 서서 손바닥으로 위원장석 탁자의 한쪽 귀퉁이를 '딱딱딱' 내리쳤다. 위원장석 주변은 의원과 취재진 100여명이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장면2>

그로부터 26분 뒤인 오후 4시37분 최연희 법사위원장이 "제16차 법사위 회의를 시작한다"고 개의 선언을 했다. 지난 4일 회의가 15차였다. 한나라당 의석(5석)만 찼을 뿐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석은 비어 있다.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안 변칙 상정 논란의 현장이다. 한나라당은 즉각 "날치기 요건도 못 갖춘""해프닝"이라고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 간 몸싸움이 크게 일어났다. 양측 간 갈등이 선을 넘은 듯 보였다.

◆ "정식 상정된 것" vs "해프닝"=양측 간 충돌이 시작된 것은 오후 4시5분. 최연희 위원장은 법안심사소위가 끝나길 기다리며 위원장실에 있었다.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과 함께였다.

회의장에서 한나라당 김재원.최구식.정문헌 의원 등이 위원장석을 둘러싼 가운데 열린우리당 간사인 최재천 의원과 강기정.선병렬 의원 등이 밀고 들어왔다. 국회법엔 법안 상정이나 의결 선포는 위원장석에서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측이 위원장석을 차지하기 위해 순간 거친 충돌이 벌어졌다. 김재원 의원이 빨랐다. 김 의원은 위원장석에 앉아 양팔을 뻗어 위원장석 탁자의 양끝 모퉁이를 잡고 엎드렸다. 최재천 의원은 "법사위원 아닌 사람은 나가라"고 소리쳤다.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김 의원 등을 끌어내려 했다. 최구식.정문헌 의원 등이 맞서 김재원 의원이 끌려나가지 않도록 눌렀다. 몸싸움이 거칠게 벌어졌다. 취재기자진도 한데 엉켰다. 이 소란으로 위원장석 의자가 기우뚱했고, 위원장석 명패가 깨졌다. 위원장석 탁자는 옆으로 돌아갔다. 그런 가운데 김 의원은 계속 위원장석에서 버텼다.

의원들 사이에선 "사람 다쳐""비켜""자식들"이란 고함이 터졌다.

충돌 6분 만에 최재천 의원이 위원장석 귀퉁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는 "열린우리당 간사가 회의합니다"라며 재빨리 탁자를 세 번 내리치고 보안법을 상정했다. 곧바로"산회를 선포한다"며 오렌지색 '헌법.국회법'(272쪽)으로 다시 세 번 쳤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회의장을 떠나며 "상정됐다"고 박수치며 환호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순간 당황했다. "날치기""무효"라고 소리쳤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화난 듯 바닥에 떨어진 법전을 걷어차며 "(열린우리당)혼자 난동 부린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내 진정됐다. "날치기를 위한 난동""날치기 미수"라고 정리한 탓이다. 김재원 의원은 동료로부터 "고마워""수고했어"란 말을 들었다. 그는 이날 저녁 가슴 통증을 호소, 인근 병원에 입원했다.

◆ "뭔 일 있었습니까"=최연희 위원장이 곧 회의를 주재했다. 소동 땐 회의장이 발디딜 틈이 없어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최 위원장은 "뭔 일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이 회의가 정상적인 회의란 주장이기도 했다. 법사위 전문위원과 속기사들도 있었다. 최 위원장은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의원이 참석해야 한다"며 1시30분간 기다리기도 했다.

최 위원장은 오후 6시쯤 "오늘 불행히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의원이 참석하지 않았다"며 "오늘 회의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고 산회를 선포했다. 최 위원장은 직전 사태에 대해 명백히 언급하지 않아 회의장을 지켰던 한나라당 의원들로부터 "결의 부존재라고 해야지"(홍준표), "무효라고 얘기해줘야지"(이규택)란 비판을 듣기도 했다.

고정애.김정하 기자 <ockham@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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