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부인 → 스미스 부인 → 소피아 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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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캐리트레이드(carry trade). 금리가 낮은 나라에서 돈을 빌려 고금리 국가에 투자하는 거래를 가리킨다. 이 캐리트레이드의 새로운 자금원으로 최근 유로화가 떠오르고 있다.

금융연구원 김정한 연구위원은 2일 발표한 ‘2009년 이후 캐리트레이드의 현황과 전망’이란 보고서에서 “유로화 약세로 인해 캐리트레이드용 통화가 기존의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해외 투자은행도 비슷한 전망을 최근 잇따라 내놨다. JP모건은 “유럽연합의 시장안정 조치로 유로화가 캐리트레이드 자금 조달 화폐로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역시 “유로존의 저금리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기대에 유로 캐리트레이드가 성행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는 1년째 1%에 머물고 있고, 당분간 인상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게다가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유로화 가치는 최근 한 달 동안 7% 넘게 하락하는 등 약세다. 유로화의 가치가 계속 떨어진다면 유로를 되갚을 때 부담이 줄어든다.

유로 캐리트레이드의 주요 투자처로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브라질(정책금리 9.5%)·러시아(7.75%)·인도네시아(6.5%)·호주(4.5%)·뉴질랜드(2.5%) 등이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통화가치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한국도 주요 투자처로 꼽힌다. 한때 캐리트레이드의 대표주자는 일본 주부들을 통칭하는 ‘와타나베 부인’이었다. 초저금리를 견디지 못한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면서 엔 캐리트레이드는 세계 금융시장의 주요 자금줄이 됐다. 금융위기 이후 엔화 강세로 와타나베 부인의 투자열기는 사그라졌다. 이번엔 그 자리를 ‘스미스 부인’으로 불리는 미국 투자자들이 대신했다.

미국이 제로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미국의 투자자금이 고금리 신흥국으로 밀려든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신흥국 증시 호황과 통화가치 상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최근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달러화가 강세를 띠면서 스미스 부인도 투자금을 거둬들일 때가 다가오고 있다. 이들의 빈자리를 채울 유력 후보가 바로 유럽의 투자자, 일명 ‘소피아 부인’인 것이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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