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12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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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김양은 즉석에서 염문의 새로운 이름을 작명하였다.

"내가 이제 이곳에 앉아있는 그대의 이름을 새로 지어줄 것이다. 앞으로 그대의 이름은 염장이다. 염문의 이름을 가진 인물은 이미 죽어 땅에 묻혔고, 다시 태어난 그대의 이름은 염장이다."

염문은 무릎을 꿇고 김양이 지어준 이름을 명명받았다.

"앞으로 사람들은 그대를 염장이라고 부를 것이다. 내가 그대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은 그대가 새 이름으로 용맹한 힘을 오래도록 떨치고, 또한 새 이름으로 오래도록 목숨을 누리라고 그리 한 것이다."

염장(閻長).

대역죄인이자 해적의 염문에서 새로이 다시 태어난 이름 염장. 김양의 설명대로 길장(長)자가 의미하듯 새로운 이름으로 오래도록 용맹과 목숨을 누리라고 붙인 이름 염장. 그러나 그의 이름이 '속일본기'에는 염장(閻丈)으로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그러하니 병부에 이름을 올릴 시에는 이자의 이름을 염장이라고 기록토록 하고 앞으로 그대가 부장으로 삼도록 하라."

김양은 김양순에게 단호하게 명령하였다.

이로써 장보고에 의해서 마지막 해적과 노비매매의 인간백정으로 낙인찍혀 자자형을 받았던 죄수 염문은 무주 도독 김양에 의해서 새 이름 염장으로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올라 김양순의 부장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차객보구(借客報仇).

고사에 이르기를 '남을 도와 원수를 대신 갚아주는 행위', 즉 김양에 의해서 미구에 밀어닥칠 재난에 대비한 자객으로 차객(借客)되지 아니하였더라면 염문은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만약 장보고가 책사 어려계의 말을 받아들여 쓸데없는 인정을 베풀지 아니하고, 염문을 능지처참하였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변하였을 것인가.

"염문을 죽이지 아니하고 살려주는 것은 절대로 불가하나이다. 그자는 반드시 먼 훗날에 화근이 될 것이나이다. 하오니 염문을 능지처참하시어 화근의 뿌리를 미리 제거해 두시옵소서."

책사 어려계는 재삼재사 장보고에게 극간하지 아니하였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보고가 마침내 염문과 그의 부하 이소정을 풀어주자 어려계는 땅을 치며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다고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던가.

"아아, 호랑이새끼에게 마침내 날개를 달아주었구나."

어쨌든 이로써 염문은 아니 염장은 무주 도독 김양의 정규군에 편입되어 부장으로 임명됐다. 그 뿐 아니라 염장의 부하였던 이소정도 면천되어 정규군이 되었다 이소정의 팔꿈치에 새겨졌던 죄명 역시 날카로운 칼로 살 껍질을 벗겨냄으로써 지워졌으며 이로써 염장은 '용맹(勇猛)한 장사(壯士)'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가 흥덕대왕 10년. 서력으로 835년 6월로 김충공의 아들 김명이 시중위에 오른지 4개월이 지났을 때의 일인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8여년 후.

염장은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화려하게 각광을 받으며 등장하고 있다.

"무주사람 염장이란 자는 용맹한 장사로 세상에 널리 저문(著聞)되어 있었다."

비열한 해적과 잔인무도한 노예상인이었던 염문에서 '널리 소문이 난 용맹한 장사였던 무주사람(武州人 閻長者 以勇壯 聞於時)'으로 뚜렷하게 삼국사기에 기록된 염장. 염장은 어려계가 우려하였던 것처럼 날개를 단 호랑이가 되어 장보고에게 복수를 함으로써 먼 훗날에 큰 화근이 되었으니, 그렇게 보면 우리들의 인생이란 일찍이 최치원이 노래하였던 '황금빛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구슬채찍을 들고 귀신을 부르는 희극'처럼 탈을 쓴 인간들이 벌이는 한바탕의 광대놀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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