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홍의 정치보기] 대통령의 아들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강북 삼성병원 뒷골목에 한정식집이 하나 있다. 동교동계 사람들이 오랫동안 다니던 밥집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야당시절 이 집을 자주 찾았다.

이 집에 들어서면 양쪽에 방이 있다. 오른쪽 문간방에는 최근 갖다놓은 8폭짜리 병풍이 있다. 기능보유자가 깨알 같은 글씨로 새까맣게 뭔가를 적어놓았다. 자세히 보면 모두 金대통령과 관련된 문건들이다. 대통령 취임사가 맨 앞에 있다. 그 다음엔 옥중서신이 있다. 이희호 여사가 옥중의 남편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맨 마지막엔 아들들의 편지가 있다.

"옥중의 아버지. 아버지의 시련은 하나님이 아버지를 크게 쓰시기 위해 연단시키는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믿습니다. 홍일."

그 병풍 앞에서 김홍일 의원과 저녁식사를 했다. 한달 전이다. 金의원에게 병풍 속의 편지 얘기를 꺼내봤다.

"믿음대로 됐네요."

"성당에 열심히 나가야 되는데."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자연스레 세상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金의원을 둘러싼 항간의 의혹 얘기가 나왔다. 그는 갑자기 흥분했다. 억울하다는 얘기였다. 알아듣기 힘든 말투였지만 메시지는 명확했다.

"내가 만약 그런 의혹들과 관련이 있었다면 이미 아버지 손에 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자기를 청와대로 불렀다고 한다.대통령은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

"너, ×××한테 돈 받은 것 있나." 액수까지 제시했다고 한다.

"철저히 조사해 보십시오. 만약 1원 한푼이라도 나온다면 아버지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결국 은밀하지만 철저한 조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金의원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다.

金의원은 자기가 이렇게 산다고 했다. 항간의 의혹에 앞서 내부의 감시와 검증을 받고 있다는 얘기였다.

다음날 박지원 전 청와대 수석을 만났다. 金의원의 얘기가 정말이냐고 물었다. 朴전수석은 맞다고 했다. 자신이 金의원에 대한 소문을 검증했다는 것이다. 차남 홍업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드러난 건 하나도 없었어요."

朴전수석은 조사결과를 모두 金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다시 한번 본인에게 확인했다.

박준영 전 국정홍보처장도 같은 얘기였다. 비슷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한번은 대통령에게 홍업씨 관련 보고를 했다고 했다. 그러자 金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홍업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거듭 확인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검증의 객관성은 별개 문제다.

金대통령이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두 아들이 항간의 소문과 달리 돈을 받지 않았어요."

그러나 꼭 돈이 중요한 건 아니다. 검증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문제는 그들이 만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각종 게이트의 주변 인물들이다. 의혹의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하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성경의 한 구절이다. 법을 어겨야 꼭 죄가 아니다. 성경을 믿는 사람에겐 성경을 어겨도 죄가 아닐까.

이연홍 정치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