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보안법 다음 회기로 연기하라

중앙일보

입력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국회 법사위 상정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서로가 한치의 양보도 없다. 법사위는 며칠째 공전하고 있다. 욕설과 몸싸움이 난무하는 수라장이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어제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선 보안법 폐지안을 상정만 하고 이어 열릴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 사이 공청회 등을 통한 국민적 토론을 벌이겠다고 했다. 얼핏 보면 상당히 신축적 입장으로 바뀐 듯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천 대표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공정거래법의 정무위 통과 당시 보안법 폐지안을 상정하지 않겠다던 약속이 깨졌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보안법 폐지안을 상정해놓고 통과까지 강행할 것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안 상정을 몸으로 저지하겠다고 한다.

불신이 여야 대치의 주된 이유다. 그 점에서 여야 모두에 책임이 있다. 서로에게 의심의 빌미를 제공했다. 우선 열린우리당은 보안법 폐지안의 임시국회 처리방침에도 불구하고 정기국회 상정을 고집하는 이유가 불분명하다. 임시국회 처리가 목표라면 그때 상정해도 무방하다. 그것이 순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은 사회자를 바꾸어서라도 법안을 상정하겠다고 했다. 열린우리당 간사는 물리력 사용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 한나라당의 의심을 더 부채질하는 것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보안법 개폐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당내에서조차 아직도 보안법에 대한 의견일치를 못보고 있다. 이번주 초 개정안을 내겠다고 했지만 지켜질지 불투명하다. 대안도 내놓지 않고 막무가내로 폐지안 상정을 막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먼저 안을 내놓은 뒤 폐지든, 유지든, 개정이든 논의를 하라.

해결점은 하나다. 한나라당은 빨리 대안을 제시하고 열린우리당과 실질적인 협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란 물리적으로 어렵게 됐다. 처리를 강행할 경우 정국 전체는 파탄이 날 것이다. 양쪽이 다음 임시국회 처리에 합의하고 이를 지키면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