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히딩크식 '창의적 플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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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 국가대표팀이 지난 17일 LA 갤럭시와의 평가전에서 0-1로 패한 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미드필더들과 공격수 간의 밸런스가 깨져 고전했다. 하지만 후반전에는 그동안 계속 주문해온 '창의적인 플레이'를 많이 보여줬다. 그래서 결과를 떠나 만족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일개 프로팀에 패한 뒤라 감독 입장에서는 화가 났을 텐데 그 와중에서도 그를 만족시킨 '창의적 플레이'란 무엇일까□

10여년 전이다. 가족과 모처럼 제주도로 겨울 휴가를 갔는데 겨울훈련을 위해 제주도에 온 지도자들이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달라고 요청해 왔다. 훈련장에는 마침 고교선수들이 연습경기를 하고 있었다.

실점을 한 팀의 지도자가 호각을 길게 불며 경기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운동장이 떠나갈 정도로 큰 목소리로 한 선수를 지목, 운동장 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곤 "이 ××야, 왜 이렇게 못하는 거야"라고 귀청이 떠나갈 정도로 야단치는 것도 모자라는지 좌우측 주먹이 빠르게 어린 선수의 얼굴로 날아가 꽂혔다.

"마- 똑바로 하란 말이야. 들어가 뛰어."

혼쭐이 난 어린 선수는 흐르는 코피를 유니폼으로 쓱쓱 닦고 운동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연습경기가 끝난 뒤 선수를 혼낸 지도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까 혼난 선수를 만났다. 그리곤 "학생은 아까 감독 선생님에게 혼이 났는데 왜 야단맞았는지 이유를 아나요"라고 물었다.잠시 시간이 흐른 뒤 그는 감독의 눈치를 살피며 잘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성장한 축구선수가 과연 '생각하는 창의적인 축구'를 할 수 있을까. 혼이 나기 전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야 다음번 같은 상황에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 아닌가. 선수들이 볼이 아니라 감독의 눈치만 살피고, 우선 실수만 피하려 드는 평범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로 굳어져 가는 것이 한국 학원축구의 한 단면이다. 이런 분위기는 성인선수가 돼서도 계속 이어진다.

히딩크 감독은 골드컵 출전을 위해 미국에 도착한 뒤 훈련 중, 또는 훈련 후에 때로는 작은 목소리로 혹은 허풍쟁이처럼 큰 목소리로 선수들의 잘못된 플레이를 지적하거나 시정해 주고 있다. 서로 합의를 도출한 후 실행에 옮긴다. 이렇게 전술의 틀 속에서 자기의 개성을 살리는 플레이를 창출하는 것이 바로 '창의적인 플레이'다. 사전에 선수와 한마디 커뮤니케이션도 없이 경기장에서 소리만 지르고, 툭하면 선수를 구타하는 문화가 사라져야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가 시도하는 훈련방법이 성공을 거둬, 한국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가 뿌리내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신문선<중앙일보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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