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취임 1년] 성과와 과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20일로 취임 한돌을 맞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임기 첫해는 9.11 테러와 뒤이은 대(對)테러전쟁 등 격랑(激浪)의 연속이었다. 전시 대통령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한 그는 올해엔 경기회복과 국내정치 등 내치(內治)에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1년 전 취임선서를 할 때만 해도 부시의 입지는 매우 취약해 보였다. 재검표와 법정공방이란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산술적인 득표수는 민주당 앨 고어 후보에게 뒤진 '소수 대통령'이었다. 취임 당시의 지지율은 50%를 밑돌았다.

그를 더욱 괴롭힌 것은 자질 시비였다.정치경력이 짧은 데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후광에 가려 본인의 능력을 검증받을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선거전 때 자주 노출된 말 실수와 외교적 무지는 "과연 초강대국의 대통령으로 적합한 인물인가"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9.11참사는 이 모든 의구심을 한꺼번에 씻어 주었다. 건국 이래 최악의 국난을 헤쳐나가며 그는 국민적 단합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다. 사건 직후 신속하고도 단호하게 테러세력에 대한 응징을 선언,불안한 미국인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전시 대통령'으로서의 리더십에서 부시는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평시 대통령' 부시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 미뤄져 왔다. 9.11 사태 이후 모든 국내 정치적 논의는 사실상 중단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시에게 본격적인 시련은 지금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단락된 데다 오는 11월 중간선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실시된 CBS 여론조사에선 당면과제로 테러(27%)보다 경기(28%)를 꼽은 사람이 많았다. 초당적으로 대테러 전쟁에 협력해 온 민주당이 우선 태도를 바꿨다.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한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는 지난 4일 부시 대통령의 핵심 공약사항인 감세정책에 대해 "재정에 타격을 줘 경기회복이 어려워진다"며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나섰다. 또 다른 민주당 실력자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도 16일 감세안 철회를 요구했다.

뒤로 미뤘던 쟁점들이 한꺼번에 불거져 나오면서 민주당과의 치열한 논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최대 이슈는 경기부양이다.

지난해 3월부터 하강국면에 접어든 경기가 하반기까지 살아나지 않는다면 선거는 쉽지 않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고도 불황을 이기지 못해 재선에 실패한 사례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엔론사태로 더욱 시급해진 정치자금법 개혁, 에너지 정책, 의료보험.연금개혁 등 손을 대다 만 각종 과제들도 부시의 손을 거쳐야 한다.

외교는 부시에게 더욱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취임 초 보여줬던 일방주의적 강경노선으로 복귀한다면 국제사회와의 마찰을 피할 수 없다.

당면과제인 2단계 테러전쟁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알 카에다 연계망을 파괴하는 수준의 선택적 소규모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적극적 개입을 꺼리던 중동정책도 다소 수정될 전망이다. 이스라엘 편향정책이 반미테러의 직.간접 원인이란 분석이 미국 내에서도 제기되고 있어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예영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