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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TV토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재작년 미 대통령 선거전이 종반에 접어들 무렵 공화당 부시 후보 진영은 TV토론 방식을 놓고 고민에 싸였다.검토 끝에 세차례의 토론 중 첫번째는 종전처럼 1대1 토론으로 하지만 2.3회는 CNN의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와 NBC의 정치토론 프로그램 참석으로 대체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자 캠프 주변에서 "토론을 겁내는 것으로 비치게 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결국 두 후보는 진행방식이 각각 다른 세차례 토론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처음엔 둘다 연단에 서서 진행하고,2.3회는 탁자에 앉아 하되 3회 때는 청중들도 참여시키기로 했던 것이다. 결과는 부시측의 걱정과 달리 무승부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TV토론이 승패를 가른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60년 9월 26일 시작된 네차례의 케네디-닉슨 대결이다. 미국인 7천만명이 시청했고, 이 중 57%가 "토론회를 보고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고 응답했다. 물론 43세의 젊은 케네디가 훨씬 유리했다. 재미있는 것은 토론회를 라디오로 들은 사람은 케네디보다 닉슨을 더 지지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케네디는 당선 후 하루 두차례의 백악관 기자회견을 정례화하고, 이 때 TV카메라가 들어오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대변인이던 샐린저에 따르면 TV 덕을 톡톡히 본 케네디도 출연 횟수는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한다. 33년부터 '노변담화(爐邊談話.fireside chat)'형식의 라디오 토론으로 인기를 모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토론회를 연 1~2회로 제한해 '희소가치'를 노린 것을 본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선후보 TV토론은 케네디-닉슨 이후 16년간 중단됐었다. 64년 선거 때는 현직 대통령이던 린든 존슨이 기피했고, 68.72년에는 닉슨 후보가 '악몽'이 재현될 것을 우려해 사양했다.

현직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 지미 카터 전 조지아 주지사가 맞붙은 76년 선거에서 TV토론은 가까스로 부활했다. 이 때 포드는 "동유럽은 소련의 지배에서 해방됐다"는 등 실언을 남발하다 결국 선거에서 졌다.

본격적인 대선 후보간 토론은 아니지만, 민주당 대선 예비주자들을 중심으로 오늘부터 TV토론이 시작된다.

매체의 성격상 토론 시청자는 자칫하면 교언영색(巧言令色)에 좌우되기 쉽다. 겉모양을 떠나 바람직한 지도자를 제대로 골라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본다.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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