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연 420억 근로자 임금에 미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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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측 설비물자의 남한 반출을 까다롭게 하겠다는 건 우리 정부의 공단 인력 축소 조치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북 대응 조치의 일환으로 평소 1000명 선이던 남측 근로자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자 자재·장비의 반출을 통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남측 인력에 직접 통제를 가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란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북한의 통보 내용 중 눈에 띄는 건 설비 등을 반출해 생산라인을 줄이더라도 북측 근로자를 휴직시키지 못하도록 한 점이다. 연간 4000만 달러(420억원) 규모인 임금 수입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4만3000여 명에 이르는 북한 근로자의 생계 문제를 신경 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총국 관계자가 설비 반출 통제 방침을 전하면서도 “개성공업지구 개발을 계속할 것”이라며 공단의 지속적 가동을 희망하는 의중을 보인 점도 주목된다. 개성공단 기업창설·운영규정(2003년 4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결정)은 ‘기업을 청산하고 남은 재산은 공업지구 안에서 처리하거나 공화국 영역 밖으로 내갈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조치는 규정에 의한 통상적 청산절차라기보다는 임시조치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천안함 사태의 후폭풍에도 불구하고 공단 운영 지속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보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공단 폐쇄 문제는 특구개발지도총국이 아니라 군부가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공단 통행을 차단했던 2008년 12·1 조치 때도 군부는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다. 군부 실세인 김영철 당시 국방위 정책국장은 남측 기업인 대상 설명회에 들어와 있던 북측 경협 관계자들을 “우리 민간부문은 다 나가라우”라며 쫓아내기도 했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우리 정부의 대북 조치 속도조절과 맞물려 있을 가능성이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북 전단 살포 및 전방의 확성기를 통한 대북 방송 조치는 개성공단과 천안함 사건의 유엔안보리 회부 문제 등을 감안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공격 행위를 유엔 안보리에 보내면서 다른 형태의 공격인 심리전을 펴는 것은 한국의 입지를 좁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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