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위기] 발묶인 돈 증시로 증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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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르헨티나에는 '콜촌'은행이 가장 안전하다는 말이 있다. 콜촌은 침대 매트리스를 말한다. 즉 침대 밑에 돈을 숨겨두는 것이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얘기다.

요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 말의 중요성을 뼈에 사무치게 느끼며 산다.

지난해 12월부터 정부가 은행예금 인출한도를 한달에 1천페소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이 돈은 최저생계비 정도밖에 안된다.

땀흘려 번 돈을 마음대로 찾아 쓸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월급이 고스란히 은행계좌로 들어가는 봉급생활자들은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와 은행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돈을 떼먹혔다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돈이 은행에 묶여있는 동안 '1페소=1달러'환율정책이 폐지됐고, 그 결과 돈가치는 40%나 폭락했다. 가만히 앉아 예금액의 40%를 날린 것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정부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예금인출을 제한하지 않을 경우 은행이 도산해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작 하는 말이 "언젠가는 주겠다"는 정도다.

최근 취임한 에두아르도 두알데 대통령은 한술 더 떠 달러예금 동결조치도 발표했다.

페소예금에 대해선 한달 인출한도를 1천5백페소로 높였지만 페소화 가치하락으로 달러로 계산하면 1천달러 남짓에 불과하다.

산발적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탓할 수 없는 지경이다. 정치불안이 여전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주가는 강한 오름세를 타고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비밀은 예금인출제한조치의 허점에 있었다. 예금을 현금으로 찾을 순 없어도 다른 계좌로 옮길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은행예금을 증권계좌로 옮긴 뒤 우량주를 대거 사들이고 있다. 돈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주식이라는 금융 자산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특히 뉴욕 증시에 동시 상장돼 있는 종목이 인기다. 국내에서 산 주식을 뉴욕 증시를 통해 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뉴욕 증시의 주가가 이곳보다 싸면 그만큼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묶여있는 돈을 합법적으로 빼낼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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