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마을 '백의천사' 16년 선행 훈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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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강원도 삼척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30분 남짓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경상북도를 지척에 둔 작은 어촌마을을 만난다. 삼척시 근덕면 장호리다.

5백60여가구 대부분이 4천만~6천만원씩 빚을 지고 있는 가난한 마을. 빚더미 살림을 견디다 못해 이혼한 부부도 많아 부모없이 할머니 손에 크는 아이들이 20여명이고, 혼자 사는 노인도 70여명이나 되는 곳이다.

마을 어귀 한 민박집 벽에는 이런 글이 적혀 객을 맞는다.

'깔끔하고 친절한 보건지소(24시간)가 있으니 구급약은 준비하지 않아도 될 듯'.

지난해 이 마을에 들렀다가 보건진료소를 이용한 어느 신부가 썼다는 글이다.

4년 전부터 장호1리 등 부근 5개 무의촌(無醫村)을 돌봐온 보건진료소장 남윤미(南潤美.38.여)씨.

1천3백여 주민들은 모두 그를 "우리 소장님"이라고 부른다. '24시간'이라고 적힌 데서 보듯 南씨는 근무시간이 따로 없다.

노인정에서 만난 김계화(金桂花.90)할머니는 "언젠가 오전 2시쯤에 숨이 막혀와 전화했더니 소장님이 바로 달려오더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강순남(姜順男.88)할머니는 "보건소에 갈 때마다 꼭 집까지 차로 태워다 준다"며 칭찬을 거들었다.

1986년 강릉에서 간호대를 졸업하고 공무원으로 채용된 뒤 도내 무의촌만을 돌며 일해온 南씨는 가족이 상(喪)을 당했을 때와 출산했을 때를 빼곤 지난 16년 동안 '휴가'를 간 적이 없다. 이런 그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라치면 마을 이장은 며칠 전부터 안내방송을 해야 한다.

"주민 여러분. 이장입니다. 우리 소장님이 교육 때문에 내일 낮에는 보건소 문을 닫습니다. 저녁부터 문을 여니까 낮에는 아프면 안됩니다."

2000년 봄의 일이다. 삼척시가 구조조정 차원에서 장호리 보건진료소를 폐쇄하는 바람에 南씨가 떠나게 됐다.

그러자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삼척시와 지역출신 국회의원 등을 찾아다니며 "우리 소장님을 돌려달라"고 졸랐다. 결국 南씨는 보름 만에 돌아와 다시 진료소 문을 열었다.

하루 24시간 주민들을 돌보느라 南씨는 한 시간 거리의 삼척시 도계읍 임업회사에 근무하는 남편 김명남(金明男.42)씨와는 주말부부다. 6급 별정직 공무원인 그는 월 1백10여만원의 봉급으로 초등생 두 아이와 진료소에서 먹고 잔다. 남들은 아이들 교육을 위해 도회지로 간다지만 "애들은 시골에서도 잘 큰다"며 마을사람들 곁을 지키고 있다.

그가 챙기는 건 마을사람들의 건강만이 아니다.

30평 남짓한 진료소의 물리치료실에는 자신의 박봉을 쪼개 마련한 3백여권의 아동 도서가 가득하다. 또 南씨 가족이 생활하는 방 두개 중 하나는 마을 아이들이 컴퓨터 등을 하며 놀 수 있게 늘 열어둔다.

주민 이옥분(李玉分.45.여)씨는 "아이들이 제 집처럼 여기서 공부하고 함께 논다"며 "학교 운동회가 열리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의 점심도 만들어 주는 고마운 소장님"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사람을 잘못 찾아왔다"며 문전박대하고 자신의 삶이 유난스레 비춰지는 게 싫다며 기자에게 통 입을 열지 않던 南씨에게서 가까스로 들은 유별난 봉사정신의 비밀은 이랬다.

"태백 탄광의 광원이던 아버지 밑에서 정말 어렵게 컸어요. 초등학교 때 육성회비를 못내 교문 앞에서 돌아오곤 했어요. 중1 때 담임이던 심금보 선생님이 고교 때까지 학비를 대줬어요. 지금은 선생님 소식을 몰라요. 하지만 지금 제가 맡은 일을 묵묵히 하는 게 그 은혜를 갚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공무원으로서 맡은 일을 충실히 하는 거 말이에요."

삼척=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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