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뒤흔든 '패스21' 윤태식은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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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에게까지 로비망을 뻗친 것이 드러난 패스21 대주주 윤태식(尹泰植.44)씨의 그동안 행적을 보면 그는 아주 특이한 사람이다.

중학교 중퇴 학력에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적이 없지만 이리저리 사람을 만나고 친분을 쌓는 사교술과 비즈니스 감각만은 대단했다.

여성 편력이 상당히 복잡해 검찰 수사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사기죄로 복역하기도 했으나, 출소 후 김현규(金鉉圭)전 의원 등을 통해 청와대에까지 손을 뻗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 패스21 창업과 로비=패스21 지문인식기술의 원천기술 소유자는 서울 강서구 3층 빌딩에 있는 B사. 지난해 56억원 매출을 기록한 중소업체다. 1994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문인식기술 분야에서 선두 그룹에 속한 업체였으나 97년 외환위기로 자금난에 허덕이던 중 98년 4월 尹씨를 소개받았다.

尹씨와 이 회사를 연결해 준 사람은 사업가 金모씨. 98년 7월 尹씨가 회사 채무(약 10억원)를 떠안는 조건으로 동업에 들어갔다.

98년 9월 이 회사가 금융기관에서 신용불량 업체로 분류되는 등 기존 이미지로는 사업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尹씨와 金씨는 회사명을 패스21로 바꿨다. 그러나 사업추진 방향 등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면서 동업 9개월 만에 尹씨는 金씨와 갈라섰다. 이후 尹씨의 사업확장 로비가 본격화됐다.

尹씨가 로비의 한 축을 이룬 金전의원을 만난 것은 사기죄로 복역 때 알게 된 安모씨를 통해서였다. 尹씨는 96년 여름 출소 후 安씨의 서울 강남 사무실을 빌려 쓰고 있던 중 金전의원이 벤처사업을 구상 중이라는 것을 안 安씨의 소개로 金전의원과 동업을 시작했다.

패스21의 자금줄인 서울경제신문 김영렬(金永烈)사장의 부인 尹모씨를 만난 것도 역시 安씨와 연결된 洪모씨를 통해서였다. 윤태식씨는 동업관계를 이용해 尹씨의 남편인 金사장을 통해 정통부에 기술인증 로비와 언론 로비를 벌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 과거 사기 행각=86년 초 비디오 제작 및 유통업체인 S통상에 임시직으로 취업한 尹씨는 당시 사장 徐모씨에게 "홍콩에서 비디오 판권을 얻어 국내에 유통시키면 큰 돈을 벌 수 있는데 그 판권을 얻어오겠다"고 제안, 홍콩지사장 자격으로 홍콩으로 출국했다. 현지 교민의 소개로 수지 金(당시 34세)을 만나 86년 10월 혼인신고를 하고 수지 金과 중국인 사이의 딸을 입적시키기도 했다.

수지 金을 살해한 뒤 귀국한 尹씨는 88년 D영상을 설립했다. 심한 경영난을 겪던 尹씨는 회사 관계자 20명 등의 신분증.재직증명서를 위조해 신용카드 수십장을 발급받아 5개월 동안 수억원을 사용해오다 94년 12월부터 2년6개월간 복역했다.

검찰 수사 기록에 따르면 尹씨는 또 중국 업체가 만든 위폐계수기를 사 자신이 개발한 것처럼 상표를 고치고 중국어 상품설명서를 한글로 번역.첨부해 "대부분의 금융기관에 납품될 제품의 공급권을 주겠다"며 金모씨에게 5천만원을 빌려 가로채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 "중국 푸둥지구에 주상복합건물을 지어 큰 돈을 벌게 해 주겠다"고 속여 K유통 대표 林모씨로부터 1천만원을 받아 가로채는 등 패스21을 설립하기 전까지 뚜렷한 벌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尹씨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가정의 4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서울 H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D중학교 1학년을 중퇴했다. 79년 2월부터 80년 4월까지 방위병(일병 제대)으로 병역을 마쳤다.

그러나 여성들과 교제하거나 사업관계자들을 만날 때는 "육사를 졸업한 뒤 대위로 예편했고 홍콩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특수공작원으로 북한을 세차례 다녀왔다"는 등 준수한 외모와 능란한 화술로 상대방을 속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용환.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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