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실리’ 좇는 CSR, 이벤트가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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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호 30면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경영의 주요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수의 대기업을 비롯해 상당수 기업이 앞다퉈 관련 활동에 나서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의 나라 얘기쯤으로 치부됐던 사회책임경영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 CSR이 공익에 기여한다는 명분을 살리면서 동시에 비즈니스상의 실리도 거둘 수 있는 양수겸장의 묘책이기 때문이다. 사회 참여 사업은 더 이상 일회성 이벤트가 아닐 뿐 아니라 단순한 자선이나 봉사에 머물지 않는다.

한찬희의 프리미엄 경영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코틀러는 CSR을 ‘기업이 쫓아야 할 두 마리 토끼’로 표현했다. 그는 저서 『CSR 마케팅』에서 사회책임경영을 기업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활동이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함께 눈에 보이는 사업상의 이익을 가져다줄 중요한 마케팅 도구로 평가했다. 지속적이고 적절한 사회 참여 활동이야말로 충성도 높은 고객을 늘리고, 이를 통해 매출 확대를 이끌어 내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본 것이다.

실제로 CSR은 기업 경쟁력 강화의 직접적 동력이 될 수 있다. 먼저 판매 측면에서 보자. 시장에 선보이는 제품들이 서로 엇비슷한, 즉 동종 제품들 사이에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라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가장 싼 제품을 구매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일부 기업이 뛰어난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 강력한 브랜드를 내놓지 않는다면 저가 선호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가격 경쟁이 언제까지나 유효하지는 않다. 어느 시점에서 가격 평준화가 이뤄질 것이고 그러면 가격은 더 이상 구매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가 될 수 없다. 이때 만약 어떤 기업이 효과적인 CSR을 통해 소비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면 소비자들의 손길은 이 회사 제품으로 향하게 될 공산이 크다. 소비자들의 이 같은 경향은 이미 친환경 제품 등의 선택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성실히 이행한다는 평판을 가진 기업은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도 유리하다. 유능한 인재들이 취업 대상으로 여러 기업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요인을 비교 분석해 진로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답은 명확하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회를 위해 가진 것(그것이 물질이든 어떤 활동이든)을 내놓을 줄 아는 ‘착한 기업’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글로벌 인력 서비스 그룹인 아데코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4%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관점에서 CSR을 이해한다면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회책임경영에 대한 일관된 전략 수립이다. 어떤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고 지원해야 하는지, 반대로 어떤 문제에 어떤 이유로 지원을 거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필요하다. 활동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외부의 유관기관과 협력을 구축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무엇을 줘야 할지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함께 회사의 전략적 방향에 부합하도록 사회 참여 사업을 기획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세계 2위 컴퓨터 제조업체인 델의 CSR 활동은 기업의 전략적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용 후 버려지는 컴퓨터 수가 급증해 사회 문제가 되자 델은 사회재단과 제휴해 고객들이 쓰고 남은 중고 PC를 자선단체에 기증하도록 주선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고객 입장에서는 헌 컴퓨터를 손쉽게 치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처리비용까지 아끼는 이득이 돌아왔다. 빈곤층 어린이와 장애인을 지원하는 사회단체들 역시 이 캠페인으로 적지 않은 수혜를 입었음은 물론이다.

지금도 고객들이 델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델 리사이클링’ 코너에 접속한 뒤 기증할 컴퓨터의 정보를 입력하면 사회재단이 기증자의 거주 지역 안에서 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단체에 연결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에너지 소비 절감과 같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회사 차원에서의 다른 활동들과 맞물려 델을 책임 있는 기업으로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뒀다.

이 같은 공익 캠페인 외에 공익과 연계한 마케팅 또한 자주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맥도날드는 2002년 말 전 세계 100여 매장에서 아동복지기금 마련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빅맥 등 자사 제품이 하나 판매될 때마다 1달러의 기금을 적립해 공익기관에 전달했다. 이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였을 뿐 아니라 매출이 느는 과실도 맛볼 수 있었다.

공익 캠페인이나 공익 연계 마케팅에서 성공의 관건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특정 이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많은 사람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도록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 공감을 유발할 수 있는 메시지를 개발하고, 전파력이 높은 미디어 채널과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단체를 파트너로 확보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1994년부터 비행기 탑승객에게서 수거한 동전을 사회사업에 지원하는 활동을 벌여 오고 있는 브리티시항공의 파트너는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이다.

착한 기업이 성공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CSR은 더 이상 일부 돈 많은 기업의 사치나 생색 내기가 아니다. 기업의 존속과 발전을 좌우할 핵심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적 책임 이행을 전반적인 경영 전략에 편입시키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된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은 또 하나의 강력한 경쟁 우위 요인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구현하는 현실적 대안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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