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중국어로 된 ‘천안함 문건’ 보여줘…원자바오, 안경까지 벗어가며 열심히 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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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단독 정상회담 30분이 100분으로.

② 국빈 만찬에 앞서 별도의 단독 대화 20여 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오른쪽)과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이 28일 오후 청와대 환영만찬이 열리기 전에 만나 자신들의 머리를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28일 만남은 여러모로 이례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우선 단독 정상회담은 당초 오후 2시45분부터 30분간으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두 정상이 청와대 본관 2층 접견실에서 확대정상회담을 위해 참모들이 대기 중인 1층 세종실에 모습을 드러낸 건 오후 4시20분을 넘겨서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세 배 이상 늘어난 100분 동안 단독 회담을 한 것이다.

이 100분 동안 이 대통령과 원 총리는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만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고 한다.

특히 이 대통령은 회담장에서 사진 등이 곁들여진 자료까지 직접 꺼내 들고는 마치 브리핑하듯 지난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와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대통령이 오늘 충분히 (중국 측에) 전달할 말을 다 했다”며 “비교적 여러 곳에서는 강한 워딩(발언)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청와대 핵심 참모는 “아무래도 설명을 하려다 보니 이 대통령의 발언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이날 이 대통령이 제시한 자료는 ‘천안함 침몰 사건 조사 결과’라는 A4용지 3장 분량의 문건이었다고 한다. 분량이 길지는 않지만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해당 사진들과 함께 망라돼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북한이 해외에 배포한 어뢰 ‘카탈로그’에 실린 설계도와 이번에 사건 해역에서 수거된 스크루 부분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틀 전인 26일 이런 식의 요약 자료를 만들라고 미리 청와대 참모들에게 지시했으며, 회담에서는 중국어 번역본까지 전달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설명에 나서자 원 총리도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한다. 이동관 수석은 “원 총리는 수긍한다는 듯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고 전했다. 또 “(작은 글씨를 보려고) 쓰고 있던 안경까지 벗어 (자료를) 가까이 들여다보고, 아주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양국이 조율을 거친 발표문에선 이런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원 총리에게 “이번만큼은 중국이 북한의 잘못을 인정하고 적극적 역할을 해달라”고 강조했다고 이 수석은 전했다.

이 대통령은 국빈 만찬을 위해 오후 7시10분쯤 청와대를 다시 찾은 원 총리와 영빈관 VIP 대기실에서 통역만 배석한 채 20여 분간 또다시 단독 대화를 나눴다.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이 중국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신경 썼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오늘 정상회담은 성공적인 회의라고 평가하고 싶다”며 “두 나라는 좋은 이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 총리는 “가까운 이웃은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서로 지지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회담은 우호적이고 솔직한 분위기 속에서 심도 있게 진행됐다”고 화답했다.

글=남궁욱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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