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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방송사 사장들의 합의 위반 논란 낯뜨겁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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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아공 월드컵 중계를 둘러싼 방송 3사의 공방이 낯뜨겁다. SBS가 지난 25일 단독 중계를 선언하자 KBS와 MBC가 잇따라 SBS 측을 사기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합동방송을 약속하고서는 몰래 단독중계권을 따냈다는 것이다. 그러자 SBS도 이들 방송사를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맞고소할 태세다. 시시비비(是是非非)는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국민이 주인인 ‘시청권’을 놓고 방송사들이 서로 제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된 것 같아 씁쓸하다.

과거 방송사들은 서로 독점 중계를 노리다 중계권 가격만 올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방송 3사 사장단이 2006년 5월 30일 ‘스포츠 합동방송 합의사항’을 체결했다. 과당경쟁으로 자신은 멍들고 IOC와 FIFA의 배만 불려주는 짓은 하지 말자는 ‘신사협정’이다. 그래서 2010~2016년까지 겨울 및 여름 올림픽과 월드컵 대회의 방송권 협상 창구를 ‘코리아 풀’로 단일화하고, 방송권과 관련해 어떠한 개별 접촉도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SBS가 합의를 지키지 않고 몰래 단독중계권을 따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코리아 풀’이 제시한 금액보다 3450만 달러나 더 줬다고 한다. 이에 SBS는 합의서가 효력이 없고, 국부 유출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인 속사정까지야 알 수 없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대목은 보기 민망하다. 방송사 사장이라면 우리 사회 최고의 지성인이요 리더다. 그만큼 높은 품격과 도덕률, 사회적 책임감이 요구된다. 이들이 거꾸로 신의성실 원칙을 어기고 시장판 같은 다툼을 벌이고 있으니 실망이 크다.

이번에는 공동중계가 불발됐지만, 과연 앞으로도 이런 무한경쟁을 벌일 것인지 방송사들 스스로 잘 판단하기 바란다. 과당경쟁은 필연적으로 프로그램의 질 저하를 초래하고, 나아가 국민의 ‘시청권’을 위협할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렇더라도 사안에 따라 국부(國富)의 유출을 줄이고, 전파낭비를 최소화하며,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전파는 공공재이고, 시청권의 주인이 국민이란 점에서 스포츠 중계의 새로운 틀을 짜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