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입국비자 거절 파장] 중국, 외교 관례 깬 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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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 개정과 관련, 입법 조사차 방중(訪中)하려는 여야 의원에게 중국이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은 이 법의 개정 방향에 대한 불만 때문으로 보인다.

여야 의원들은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재외동포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린 이래 중국동포(1백88만명)에게도 출입국 혜택 등을 주는 쪽으로 개정의 가닥을 잡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에 중국은 "중국 국민을 한국 법률로 규율하려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해 왔다. 그래서 중국의 이번 조치는 "재외동포법 수혜 대상에 중국동포를 포함하면 안된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소수 민족 문제에 대한 중국의 알레르기 반응으로 봐야지, 한.중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사안은 아니라는 게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한.중 수교 이래 우리 정치인에 대해 중국이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은 처음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구나 입법 활동을 위한 의원들의 입국을 거부한 것은 국제사회에서 드문 일인 만큼 외교문제화할 소지도 없지 않다.

당장 당사자들은 주한 중국대사관에 항의 서한을 보내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다만 정부는 중국동포를 재외동포법상의 수혜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정치권의 법 개정 움직임에는 우려한다. 양국 관계가 꼬일 것이 불보듯 뻔하고, 중국동포의 무더기 입국에 따른 노동시장 교란과 안보상의 이유 때문이다.

혈통주의로 비칠 수 있는 이 법이 세계화 시대의 조류에도 맞지 않고, 북한이 중국동포에 대한 연고를 내세우면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고도 지적한다.

인권쪽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권과는 엇박자를 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재외동포법의 실제 개정 방향을 점치기는 어렵다. 게다가 새 입법의 유예기간이 정권이 바뀌는 내년까지로 돼 있는 점도 변수다. 새 입법 문제가 다음 정권의 재외동포 정책 차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재외동포법=재외동포로 인정받아 국내에 거소신고를 하면 2년 동안 재입국 허가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출입국할 수 있고 부동산 취득.보유 등도 가능토록 한 법.

1999년 12월부터 시행됐다. 그동안 논란이 된 부분은 재외동포의 범위다.법 제정 당시 중국.러시아의 반발로 그 범위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외로 나간 동포'로 제한, 한말.일제하 고국을 떠난 중.러 동포가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 외교적 타협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평등의 문제를 들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졸속 입법임이 드러났다.

헌재 결정에 따라 정부는 ▶정부 수립 이전에 해외로 간 한민족도 수혜대상에 포함하되 이에 따른 혜택을 제한하거나▶재외동포법을 폐지한 뒤 관련 법령을 개정해 재외동포에게 실질적 혜택을 주는 방안을 집중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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