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성복 '신기하다,신기해…'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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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째서 산은 삼각형인가 어째서 물은

삼각형으로 흐르지 않는가 어째서 여자

젖가슴은 두 개 뿐이고 어미 개의

젖가슴은 여덟 개인가 언제부터 젖가슴은

무덤을 닮았는가 어떻게 한 나무의

꽃들은 같은 색,같은 무늬를 가졌는가

어째서 달팽이는 딱딱한 껍질 속에서

소리지르지 않고 귤껍질은 주황색으로

빛나며 풀이 죽는가 귤껍질의 슬픔은

어디서 오는가

(중략)

신기하다,신기해,햇빛 찬연한 밤마다

악몽을 보내주신 그대,목마름을

더 다오! 신열을 더 다오!

-이성복(1952~) '신기하다,신기해,햇빛 찬연한 밤마다'중

황동규 시인에게 "시인은 끈질기게 어렵게 살아야 시인이 아닐까요?"라고 물었던 시인의 시. 어째서 진지한 시인들은 끈질기게 '질문'만 던지는가.

어째서 경박한 시인들은 언제나 준비된 '답'을 써서 지루한 깨달음의 시집만 내놓는 것일까? 질문과 답이 영 동문서답인 세상, 신기하다 신기해.

김화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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