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 직권상정 제도 빨리 없애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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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미국이나 영국의 의장이 갖는 권위의 반의 반만이라도 차기 의장에게 인정하면 국회가 달라질 겁니다.”

29일로 임기가 끝나는 김형오(사진) 국회의장이 27일 집무실에서 퇴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2년의 임기 동안 역대 최악의 물리적 충돌을 경험한 김 의장은 입법부 수장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는 정치권 분위기에 섭섭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 의장은 “국회의장을 2년 하면서 직권상정만큼은 과감히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여당은 다수당의 힘으로 직권상정을 밀어붙이고, 야당은 회색분자로 몰릴까 봐 단 하나도 양보하지 않아 모든 게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린 후진적 국회 제도를 하루 속히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힘의 정치와 버티기 정치, 다수결 원칙과 소수자 보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지 부단히 고민하며 결단을 내려왔다”며 “취임시 밝힌 3대 목표인 정책·상생·소통국회를 만들기 위해 일로 매진했으나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여야가 무려 8개월 동안 대화와 타협 없이 대결해 국민이 국회의 존재에 대해 본질적 회의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그는 “역사에 부끄럼 없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한다”고 덧붙였다.

개헌에 대한 신념도 여전했다. 그는 “18대 국회 전반기가 개헌의 가장 적기였다면 후반기 국회 초반 6~7개월은 두 번째 적기”라며 “개헌에 소극적인 민주당도 지방선거 이후에 개헌을 하겠다고 공언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4년 중임제에 대해 “5년 단임제의 핵심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임기만 8년으로 늘리면 4년 중임제는 8년 단임제와 다름없다”며 “앞으로 언론에선 4년 중임제가 아니라 미국식 대통령제라고 표현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퇴임 후 행보에 대해 “이명박 정권의 성공을 위해 백의종군하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김정하 기자,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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