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 문화 지킨 아프간인 소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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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바미안 석불, 카불 국립박물관의 미술품 2천7백여점…. 탈레반 정권은 아프가니스탄의 찬란한 문화도 짓밟았다.

그러나 요즘 카불에서는 끊어졌던 문화예술의 맥을 이으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3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5년간 탈레반 정권의 눈을 피해 예술품들을 보호해온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내과의사이자 화가인 무하마드 유소프 아세피. 그는 탈레반군이 카불에서 물러나자 국립미술관 창고 깊숙이 숨겨둔 수채화 수십점을 꺼냈다.

그림들은 아프가니스탄의 드넓은 산악지대와 인적없는 거리 풍경이 대부분. 하지만 아세피가 물묻은 스펀지로 그림을 살짝 문지르자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카불시장 정경이 나타났다. 인물화와 화려한 유화들도 차례차례 되살아났다. 탈레반 정권은 사람.동물을 그림이나 사진에 담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었다.

아세피가 그림들에 '보호막'을 입힌 것은 지난해 초부터. 탈레반 경찰이 미술품들을 파괴하기 시작하자 골방에서 목숨을 걸고 덧칠작업을 계속했다. 아세피는 "종교경찰들이 덧칠한 그림을 하나하나 검사할 때는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카불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무하마드 샤는 두 동생과 서점직원 네명이 금기서적을 판매한 혐의로 체포되는 시련을 겪었다.지난해 여름 당국의 수배를 피해 파키스탄으로 건너간 샤는 아프가니스탄의 풍경과 인물사진을 포스터.엽서로 만들어 수출하며 탈레반 정권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탈레반 정권이 눈에 불을 켜고 찾던 1천여개의 영화테이프도 최근 모습을 드러냈다. 국영영화사 직원 8명이 단속을 피해 창고와 땅 속에 묻어둔 덕분이다.

영화사의 압둘 자밀 사와르 국장은 '문화가 살아 있어야 나라가 존재한다'는 국립박물관의 현판 문구를 소개하며 "연일 영화관을 메우는 카불 시민이 아프가니스탄의 주인"이라고 강조했다. 사와르 국장은 최근 영화제작을 준비 중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영화를 만들기는 꼭 10년 만이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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