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무용] 박수진작 '영광의 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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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연극 '영광의 탈출'(극단 미추)은 신예 극작.연출가인 박수진과 강대홍 콤비의 세번째 작품이다. 둘은 이미 '춘궁기''용병'을 통해 충분한 잠재력을 입증했다.

두 전작과 같이 이 작품도 현대사, 특히 분단과 이산(離散)의 아픔을 천착했다. 그래서 작가는 이 작품을 자신의 현대사 연작의 완결편으로 정의했다.

협업(協業)의 성과는 만남의 횟수에 어느 정도 비례하는 모양이다. '영광의 탈출'은 완결편답게 둘의 노련미가 넘쳤으며 주제의 호소력도 뛰어났다.

말초적인 웃음과 과도한 형식미 등으로 '오버'하는 최근 연극의 대세에 비추어 정체성이 또렷했다.

당면 문제에 대한 작가의 당당한 자기발언과 애써 없는 것을 지어내려 하지 않은 소박한 연출, 시공을 폭넓게 넘나드는 배우들의 개성적인 연기도 좋았다.

그래도 이 작품을 읽는 키 포인트는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20대 말의 신예 작가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또래 젊은이들이 보는 통일관은 어떤 것인가. 이데올로기가 앞서는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가 하는.

작가는 박일국(정동환)이라는 25년 묵은 비전향장기수를 통해 분단문제의 '일상성'을 강조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사상범' 박일국이 6.25 때 헤어져 북에 있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중립(中立)사상을 포기하고 사회주의자로 변신(북송되기 위해)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은 이데올로기의 허울과 쇼적인 정치권력을 야유하는 대목으로 도드라졌다.

여기에 주제의식이 집약됐다. 한국인이면 누구든 분단 문제에서 이처럼 자유로울 수 없으며(일상성),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탈(脫)이데올로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연극은 '중립사상'을 설파한 신동엽 시인의 시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을 피날레에 배치해 이런 관점을 부각한다. 정치권력.이데올로기가 아닌 사람의 중립이 통일의 밑거름이라는 외침 말이다.

연극은 전체적인 완성도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특히 소극장 무대였던 전작보다 두배는 큰 중극장 무대에 대한 적응력이 문제였다. 그래서 쓸데 없이 깊이와 폭이 강조된 무대는 연기의 밀도를 약화시켰다. 30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80-1300.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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