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적’ 6년 만에 부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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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사라진 ‘북한=한국의 주적(主敵)’이란 개념이 부활할 전망이다.

이명박(얼굴) 대통령은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원로회의에서 “우리 군이 지난 10년 동안 주적 개념을 정립하지 못했다”며 “그간 발밑의 위협을 간과하고 한반도 바깥의 잠재적 위협에만 치중했다”고 말했다. 또 “우리 해군의 화두가 대양해군이라는데 그렇다면 (바다 건너) 미국이나 일본이 적이란 이야기냐”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공식 회의석상에서 주적 개념을 언급한 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 이후 주적 개념의 부재를 안보태세 약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지난 3일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선 “안보의 대상이 뚜렷하지 않도록 만든 외부 환경이 있었다”며 “그로부터 비롯되는 군 내부의 혼란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 핵심 참모는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세력이 북한이라는 게 분명해졌다”며 “주적 개념을 되살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도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의 장사포가 우리를 겨누고 있는 현실을 천안함 사건이 일깨워줬다”며 “(주적 개념을 부활시키는 쪽으로) 앞으로 실질적인 검토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군에 ‘북한=주적’ 개념이 명시적으로 도입된 건 1995년이다. 94년 남북한 실무접촉에서 북한 측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로 우리 정부를 협박하자 군은 이듬해 국방백서에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그 개념은 대북 ‘햇볕정책’을 내세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약해지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에 발행된 국방백서에서 빠졌다. 주적 개념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 발간될 2010년판 국방백서에 명시될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한다. 다만 그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을 듣고 토론을 해 봐야 한다고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밝혔다.

◆“궁극적 목표는 남북대결 아니다”=이 대통령은 이날 국민원로회의에서 “궁극적 목표는 남과 북의 대결이 아니며, 이 위기를 극복해 잘잘못을 밝혀 놓고 바른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편법으로 그때그때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응을) 해서는 이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 우리가 분명한 자세를 견지하는 게 필요하며, 우리에겐 그만한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서승욱·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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